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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이후 인천의 도시형성과 발전

저작시기 2013.08 |등록일 2014.09.25 한글파일한글 (hwp) | 22페이지 | 가격 2,000원

목차

1. 머리말
2. 인천 개항과 조계지 설정
3. 도시경관의 발전과 변화
4. 조계지내 갈등과 사회모습
5. 맺음말

본문내용

인천의 개항은 조선의 근대역사에서도 중요하게 언급되는데, 그 이유는 서구와의 통상을 통해 인천 뿐 아니라 한국 근대화의 창구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인천으로 들어오는 근대문물은 곧바로 수도 한성으로 이어졌고, 나라의 근대화를 직접적으로 실현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조계와 부내면 일대의 협소한 지역(약1.6평방마일)에서 발생한 개항도시 인천의 경제, 문화적 영향은 전국에 미쳤으므로 인천 개항이 갖는 의미는 더욱 크다.
인천 개항의 특징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개항장을 중심으로 한 도시 발전의 모습이다. 개항장인 제물포는 조계가 생겨나면서 모든 중심 기능이 이곳으로 이전하였고, 새로운 시가지가 생겨나면서 눈부신 발전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10년 한일 합방이후 1914년 부제(府制)가 실시되면서 조계는 철폐되었지만, 인천은 이 시가지를 중심으로 도시로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중 략>

강화도조약에 의해 개항될 항구는 부산, 원산, 인천이었는데, 부산과 원산의 경우는 비교적 원만하게 개항이 되었지만, 인천은 6년이 지난 후에야 개항되었다. 인천의 개항이 늦어진 이유는 조선정부와 일본 양측이 가진 반대요인 때문이었다. 조선정부에서 인천 개항을 반대한 주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인천의 위치가 수도와 근접해 있어서 이 항구의 개방이 국도의 안전, 사직과 왕실의 안위와 직결된다고 하는 점. 두 번째, 인천의 개항으로 미곡을 위시한 식료․생필품이 해외로 빠져나가거나 수륙의 상품이 분열하여 경성에 모두 모이지 않아 경성의 시화(市貨)가 무너지고, 서울이 쇠퇴될 우려가 있다는 점. 세 번째 원산에 이어 인천까지 개항하게 되면 국고가 핍박하여 개항시설에 투자할 財力이 없다는 점을 주장하며 개항을 반대하였다.

<중 략>

이 사건은 술 취한 일본인들이 한인들에게 행패를 부린 사건이었는데, 단순히 음주 후 일어난 사건이라고 하기에는 그 강도와 가담한 인원의 수가 도를 넘었다고 할 수 있다. 두 사건은 공통적으로 조선인이 불리한 위치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개항 후 외국인의 치외 법권이 적용됨도 있지만, 은연중에 조선인을 무시하는 외국인들의 성향이라고도 생각된다. 특히 조선인에 대한 멸시는 일본인에게서 더 명확하게 드러나는데, 이는 아마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인들의 기세가 높아져 자신들을 일개 조계의 거류민이라기보다는 조차지의 점령인으로 생각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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