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담양 소쇄원 답사 보고서

저작시기 2012.11 |등록일 2014.09.17 한글파일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조경문화사 담양 소쇄원 답사 보고서 입니다.

목차

1. 조선의 정원, 별서
2. 양산보(梁山甫, 1503~1577)
3. 양산보의 소쇄원 조성에 영향을 미친 사람들
4. 소쇄원48영(瀟灑園四十八詠)과 소쇄원
5. 소쇄원의 공간구성
6. 소쇄원의 식물
7. 느낀점

본문내용

1학년 때 교내 학술 프로그램인 이뭣고를 통해 조원들과 소쇄원을 한 번 간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아무것도 몰랐을 때라 그런지, 분명 많은 걸 들었는데도 지금 생각해보면 상당히 소규모였다는 것 외에는 딱히 기억에 남는 부분이 없다. 반면에 2학년 막바지를 보내고 있는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소쇄원에 갔을 때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눈에 들어오는 게 더 많았고 그만큼 더 큰 감동을 느끼게 되었다.

★ 조선의 정원, 별서
조선 시대에는 별서라고 불리는 독특한 정원 양식이 풍미한 시대였다. 이는 세속의 벼슬이나 당파싸움에서 벗어나 자연에 귀의하여 전원이나 산속 깊숙한 곳에 따로 집을 지어 유유자적한 생활을 즐기려는 목적으로 조성되었다. 그 경치는 산수화나 문인화 등에서 영감을 받아 조성되었고, 시나 별곡 등의 문학이 이곳 별서에서 비롯하였다. 담양 소쇄원, 보길도 부용동, 강진 다산 초당, 영양 서석지 등은 별서 중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곳이다.

★ 양산보(梁山甫, 1503~1577)
양산보가 살던 당시 조선은 당쟁과 사화로 물든 시기였다. 그는 존경하던 스승 조광조가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죽음을 맞이한 것을 계기로 17세에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이 어린 시절 노닐던 곳인 지금의 지석계곡에 작은 정원을 조성하였다. 양산보는 이 정원을 “기운이 맑고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의미의 소쇄원(瀟灑園)으로 이름 짓고 자신의 호를 소쇄원의 주인이라는 뜻의 소쇄옹(瀟灑翁)으로 지었다. 양산보는 이곳 소쇄원에서 죽을 때까지 학문에 정진하고 제자 양성에 힘을 쏟았다.
양산보는 후손에게 “소쇄원의 언덕 하나, 골짜기 하나를 막론하고 나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으니 이 동산을 남에게 팔거나 양도하지 말고 어리석은 후손에게 물려주지 말 것이며, 후손 어느 한사람의 소유가 되지 않도록 하라”는 유언을 남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후에 이 지역은 정유재란 때 왜적들의 집중적인 공략을 받았고 건물 대부분이 불에 타버렸다.

참고 자료

없음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