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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생활사] - 개항 이후 서양 집의 등장

저작시기 2014.08 |등록일 2014.08.30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7페이지 | 가격 2,500원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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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항 이후 서양 집의 등장
2. 식민지 시대 공공건물
3. 식민지시대 새로운 집 (토막,문화주택,영단주택,도시형 한옥)
4. 해방 이후 집 (해방 촌)
5. 박정희 개발시대와 집 (벌집,달동네,청계천 판자촌,아파트)
6. 강남, 타워 팰리스와 서민의 집

본문내용

1. 세창양행
독일 함부르크 Meyer상사가 제물포에 세운 무역회사의 숙소로 1884년 중국 목수에 의해 건축되었다. 일부 2층의 벽돌집으로 외벽에는 회칠이 되어있고 붉은 기와를 얹은 별장류의 주택이었다. 동쪽 옥상에 높고 네모난 전망대가 있었는데 인천부청의 매수 이후 헐어져 단층집이 되었다.
2. 공사관
러시아 공사관
높은 언덕에 위치해 덕수이 내려다보이는데 대한제국 뿐 아니라 열강들의 공사관까지 제압하려는 전략적인 측면이 드러나있다. 본래 탑부와 본체부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한국 전쟁 당시 공사관의 본체가 파괴되어 탑부분과 빈터만 남아있다.

<중 략>

공업단지의 경우 공장 주변에 산재한 ‘벌집주택’에 초고밀 상태로 생활하였다. 밖에서 보면 단독주택이지만 평균 10~30가구가 생활 할 수 있도록 구조를 변경해 이용하였다. 더욱이 통로는 협소하면서 불규칙하고 미로의 성격을 안고 있어 보건위생, 소방, 보안, 일조권, 조망권 등에 문제가 있었다. 구로공단, 가리봉동과 같이 공장단지에 많이 존재하였다.
2. 달동네
‘달동네’에서 ‘달’은 하늘의 달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땅’, ‘산’을 가리켰던 옛말인데 가난한 동네는 예부터 산비탈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나오게 된 것이다.
대표적으로 신림동, 봉천동, 가리봉동 등과 같이 공단과 가까운 곳에 형성이 되었고 청계천 판자촌을 없애기 위해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킨 지금의 성남시 일대에도 형성되었다.
정태춘의 ‘우리들의 죽음’
1990년 발표된 이 노래는 검열에 걸려 금지곡이 되었다.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 노래로서 80년대에 일어난 실제사고를 바탕으로 만든 노래이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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