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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상설구빈기관들의 특징과 역할에 대해 서술하시오.

저작시기 2014.08 |등록일 2014.08.12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8페이지 | 가격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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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조선
1) 정책 형성

2. 정책집행의 특징
1)자연관적 대응
2) 중앙정부의 대응조직의 설립
3)조세로써 사회복지정책 추진
4) 명망가 중심희 진휼정책
5) 공동체 책임
6) 아전들에 의한 관리
7) 중앙집권 방식의 사회복지 정책의 추진체계
8) 정책대상자를 세분화한 사회복지정책 집행

3. 시사점

본문내용

수재와 한재가 없는 해가 없으니, 진휼하는 정사가 흉년에 대비하는 것보다 우선하는 것이 없습니다. 지금 기후가 순조롭지 못하고 비의 혜택이 때를 잃었으나, 100리 안에 비 오고 별 나는 곳이 다르고 마르고 습한 것이 같지 않아서 비록 한건한 해를 만나더라도 반드시 풍등하는 곡식이 있는데, 두려운 것은 농민이 오늘의 주림에 부대껴서 내년의 계교를 미처 생각지 못하고 새 곡식을 모조리 먹어서 종자가 끊어지게 되는 것으로, 비록 창틈을 털어서 진휼하더라도 구제할 수 없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유사로 하여금 주헌의 창틈의 묵은 곡식을 많이 펴내어 민간에서 먹는 새 곡식과 바꾸었다가 내년에 이르러 나누어 주어 종자를 삼게 하고, 또 안팎으로 하여금 널리 구황의 물자를 비축하게 하여 생민의 목숨을 구제하소서(이민수, 2000)"라고 할 정도로 조선에서는 수재와 한재가 매우 극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 략>

'강원도 여러 고을에서 지진이 발생했다. 소리가 우레와 같았고 답벼락이 무너졌으며 기와가 날아가 떨어졌다. 양양에서는 바닷물이 요동쳤는데 그 소리가 마치 물이 끓는 것 같았고, 설악산 신흥사 및 계조굴이 거대한 바위가 모두 붕괴했다. 삼척부 서쪽 두타산 층암은 에부터 돌이 운직이다고 하였는데, 모두 붕괴했다. 그리고 부(府)의 동쪽 능파대 물 속의 10여장 되는 돌의 가운데가 부러지고 바닷물이 조수가 밀려가는 모양과 같았는데, 평일에 물이 찼던 곳이 100여 보 혹은 50~60보 노출되었다. 평창, 정선에서도 산악이 크게 흔들려 암석이 추락하는 변괴가 있었다. 이후 강릉, 양양, 삼척, 울진, 평해, 정선 등의 고을에서 거의 10여 차례나 땅이 흔들렸는데, 이 때 팔도에서 모두 지진이 일어났다. 이 같은 자연재해에 대해 조선시대에는 단순한 재앙으로 보기보다 현실정치와 관련지어 이해하거나 해석했다. 인간의 일에 대해 하늘이 경계를 내렸다고 보는 천인상관론(天人相關論)적 사유를 했던 것이다.

참고 자료

조상의 구휼정책을 통해 본 재해대책의 개선방향
다산연구회 편역(2005). 목민심서. 서울:창비.
이남희(2005) "지진 해일 등 재앙이 너무해", 월간중앙 2005년 2월호
이민수(2000) 朝鮮前期社會福祉政策 硏究.(조선전기사회복지정책 연구) 서울 : 혜안.
이해영(1997) 정책학신론, 서울: 학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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