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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적 정통성의 확립, 퇴계의 진퇴, 성현정치와 통치의 요체, 위민, 민본정치, 도덕적 인간의 완성을 위한, 교육사상, 퇴계 정치사상의 현대적 의의

저작시기 2014.08 |등록일 2014.08.11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3페이지 | 가격 2,700원

소개글

성리학적 정통성의 확립 -퇴계-에 관한 논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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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퇴계의 진퇴지절

2.성현정치와 통치의 요체
1)치자의 전형성현
2)성현에 의한 다스림의 요체
3)통치계급내의 협력과 조화

3. 위민, 민본정치

4. 도덕적 인간의 완성을 위한 교육사상

5.퇴계 정치사상의 현대적 의의

본문내용

퇴계가 활동하던 16세기는 정치적으로 혼란기였다. 중종반정 이후 절대적이던 왕권이 신권(臣權)에 의해 견제되는 상황에 있었고, 반정에 참여한 공신들인 훈구파의 정치적 영향력이 극대화돼 있었다. 뿐만 아니라 중종 대의 외척세력에 의한 권력 농단의 폐습과 영향이 퇴계가 활동하던 당시까지도 종식되지 못하고 있었다.
정치적 이해관계와 관료들의 대립 때문에 일어난 4대사화로 혼란이 가중된 이 시기에는 학자들의 현실참여가 상당히 제한됐지만, 사림(士林)이라 불린 재야학자들은 향약과 서원 등을 통해 향촌 교화와 학문연구 및 후진양성에 전력을 기울였다. 특히 명종, 선조 대에 바야흐로 조선 유학의 전성기를 맞이한 것도 이들에 의해 이기(理氣), 심성(心性)을 중심으로 한 학설의 대립 및 논쟁이 일어나면서부터다.

<중 략>

퇴계 정치사상의 핵심이 이상사회의 건설이라 한다면, 이를 위한 주체로서 치자(治者)의 역할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치자가 통치를 함에는 일차적으로 성현의 학문을 배워 자신에게 내면화하는 위기(爲己), 즉 내성(內聖)의 단계와 이를 외재화하는 위인(爲人), 즉 외왕(外王: 통치)의 단계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즉 이상적인 치자라면 외왕 이전에 내성의 과정을 거쳐야하며, 이런 과정을 거친 자를 유가에서는 성인 또는 성현으로 표현하고 있다.

<중 략>

조선의 성리학은 정주계 성리학을 포함한 모든 유학사상을 섭취․소화했고 특히 심성설 분야에서는 독자적인 연구가 있어 중국 성리학의 수준을 능가하게 됐다. 따라서 사단칠정설(四端七情說)과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 같은 심성 연구는 모두 인간 권위의 확립이 주가 됐고, 이것은 결국 윤리적 측면에서는 인성을 비호하는 인본사상이며 정치적 측면에서는 민본사상과 통한다.
원래 민본(民本)이라는 말은

참고 자료

退溪全書, 甲辰乞勿絶倭使疏.
류성렬, 「퇴계의 정치도의 실현과 성군의 역할」, 퇴계학연구,10집(1996)
詩經, 大雅 烝民.
書經, 尙書 皐陶謨.
강주진, 「퇴계의 정치사상」, 한국의 철학 4집(1976)
김영두, 한국문화사대계(II)(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92)
이환구, 「Hobbes의 자연․인간관에 관한 정치철학적 고찰」, 군산대학논문집 2집(1981)
전세영, 공자의 정치사상(인간사랑,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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