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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시의 과거 현재 미래

저작시기 2013.10 |등록일 2014.07.22 파워포인트파일MS 파워포인트 (pptx) | 42페이지 | 가격 1,500원

목차

1. Past 과거
2. Present 현재
3. Future 미래
1) 자연환경
2) 인구
3) 보건 및 위생
4) 사업체현황
5) 시정방침
6) 문화와 예술
7) 대지분석

본문내용

<조선시대>
- 진주는 일반적인 성곽도시의 특징인 성곽 안에 도시의 기능을 모두 포괄하는 형태가 아니라, 성곽외부에도 도시의 중요한 행정기능을 가지는 형태로 발전.
- 객사가 가장 북단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고, 이를 정점으로 관아와 향청이 위치하는 질서 정연한 배치.

<중 략>

<근대 1910년~1961년>
형평운동(衡平運動)
1923년 4월 24일 진주에서 조직된 형평사(衡平社)의 활동.
‘저울[衡]처럼 평등한[平] 사회를 지향하는 단체[社]’란 뜻을 가진 형평사의 주목적은 조선시대에 가장 차별받던 천민 백정(白丁)들의 신분 해방이었다. 일차적인 목적이 ‘백정’이란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 철폐와 인권 존중, 평등 대우를 주창하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 평등’이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일깨우는 활동이었다.
1906년 진주성의 동장대(東將臺)가 무너진 것을 계기로 진주성의 외성(外城)을 헐어내면서 일제(日帝)는 식민지의 원할한 통치를 위해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도시를 파괴하고 변형하였다.
일제는 시가지건축물취체규칙(1913), 면제시행규칙(1917), 조선시가지계획령(1934) 등의 시행과 1925년의 경남도청 부산 이전 등을 전후하여 진주성의 규모를 축소하고, 성의 해자역할을 하던 성밖의 저습지인 대사지(大寺池)를 메워 신시가지를 조성.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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