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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교통로(택리지)

저작시기 2013.11 |등록일 2014.07.14 | 최종수정일 2014.11.26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7페이지 | 가격 700원

목차

1.서론
2.본론
3.참고문헌

본문내용

1.서론
이번에 ‘조선시대 교통로’라는 주제로 한국지리 과제를 하게 됐다. 생소한 주제여서 어떻게 뼈대를 잡고 시작해야 될지 막막했다. 교수님께서 추천해주신 이중환의 「택리지」와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가 지은 「우리 국토에 새겨진 문화와 역사」를 참고 했다. 조선 팔도를 차례차례 소개하고 각 지역의 특산품, 말투, 생활환경, 도로, 식생 등을 다루도록 하겠다.

<중 략>

돌 줄기는 삼주원에서 벽파정까지 가로 뻗어 있어 돌다리와 같고, 돌다리의 위아래가 계단처럼 깍여 있다. 바닷물은 밤낮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밀려와 마치 폭포와 같고 물살이 매우 급하다. 이곳에서 수군대장 이순신이 해상에 머물면서 쇠사슬로 여울 위를 가로막고 왜적을 기다렸다. 왜선이 여울 위에 이르자 쇠사슬에 걸려 거꾸로 뒤집어졌다. 돌다리에 가까워질수록 물살의 흐름은 더욱 급해져 배가 급류에 휩쓸리면 돌아 나갈 틈도 없었으므로, 오백 척이 일시에 모두 빠져 한 척도 남지 않았다. 이것이 그 유명한 ‘명량대첩’이다.
땅끝에서 멀지 않은 곳,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의 이진항은 조선시대 9대로인 삼남대로의 출발점이다. 삼남대로는 원래 서울 숭례문에서부터 제주시 삼도 2동에 자리한 관덕정(觀德亭)까지 이르는 길이었다. 제주도 내에서는 관덕정에서 약 25리 길을 걸어가 조천관에 도착한 다음, 그곳 나루에서 배를 타고 전라남도 해남의 이진항으로 갔으며, 거기서부터는 육로로 이어졌다.

참고 자료

이중환, 2006;청소년을 위한 택리지, 경기도 파주: 서해문집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2003;우리 국토에 새겨진 문화와 역사, 서울: 논형
신정일, 2004;다시쓰는 택리지1, 서울: 휴머니스트
신정일, 2012;새로쓰는 택리지2, 서울: 다음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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