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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적 시각으로 바라본 터키 (보고서)

저작시기 2014.05 |등록일 2014.07.11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3페이지 | 가격 2,000원

목차

Ⅰ 터키를 주제로 선정한 이유
Ⅱ 터키의 기본 개관
Ⅲ 세계적 시야에서 본 터키 “동. 서양의 교집합”
Ⅳ 지역적 시야에서 본 터키 “오색빛깔의 페인트 칠”
Ⅴ 결론

본문내용

터키라고 하면 ‘형제의 나라’,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 응원’, ‘케밥’, ‘여행으로 유명한 곳’,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 등등의 많은 이미지들이 생각난다. 아시아에서 이 정도로 한국에게 친숙하고 또 서로 우호적인 나라는 터키가 아마 유일할 것이다. 또한 터키는 앞의 특징으로도 언급했듯이 지리적으로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있기 때문에 두 대륙의 특징이 공존하는 특별한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러한 터키를 세계적인 시야와 지역적인 시야에서 바라보고 각각의 지리적인 의미를 알아보고자 발표 주제로 선정하게 되었다.

<중 략>

1. 흑해의 역사
최초로 흑해를 찾아온 그리스인 항해가가 연안에 살던 원주민에게 사살되었기 때문에 초기에는 흑해를 폰토스아크세노스(이방인에게 비우호적인 바다)라고 불렀다. 그러나 BC 8세기 이후에 연안에 여러 그리스의 식민시가 발달하게 되어 내륙인과의 교역으로 번영하였기 때문에 이 시기에는 흑해를 폰토스에우크세이노스(이방인에게 우호적인 바다)라고 불렀다.
그 후 BC 2세기 초에 당시 로마의 황제 트라야누스에 의하여 연안의 대부분이 로마 제국에 편입, 로마의 내해가 되어 비잔틴 제국에 계승되었다.
13세기에는 몽골인의 유럽 침입에 이어 15∼16세기에 오스만 투르크가 연안지역을 정복하고 투르크의 바다가 되었을 때 마침내 '흑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투르크 제국이 쇠퇴하기 시작하자 17세기에 러시아의 남진이 재개되었고 이어 수차례의 러시아-투르크전쟁에서 러시아는 차차 흑해의 지배권을 장악하였고(18-19C), 이윽고 지중해로 진출할 태세를 갖추었다. 하지만 여기에 영국과 프랑스 등의 열강들의 이해가 충돌, 결국 크림 전쟁(1853∼1856)을 초래하였다.
이 전쟁에서 러시아는 패배하여 기득권(특히 함대 보유권과 연안 요새 구축권)을 상실하하였으며 흑해의 중립화가 확립되었고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로잔 회의와 몽트뢰 회의를 거쳐 현재 흑해는 모든 나라의 상선에 개방되어 있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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