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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더전요(경덕진요)

저작시기 2012.07 |등록일 2014.07.02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7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징더전요에 대해서 조사.

목차

Ⅰ. 경덕진 명칭의 유래

Ⅱ. 사상(시대)배경
1)시대적 배경
2)지리적 배경
3)사회문화적 배경

Ⅲ. 작품 분석 및 특징

Ⅳ. 미술사적 의의

Ⅴ.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경덕진 명칭의 유래
중국 ‘사대 명진’ 가운데 하나인 경덕진은 처음에는 창남진이라 불렸으며, 후에 도예업이 성행하자 도양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동진 때 신평진으로 개명하였다. 당대에는 처음엔 신창현, 후에는 부량현으로 불렸다. 북송 경덕 원년(1004년)에 다시 진으로 바뀌었다. 진종 때 이 지역에서 생산된 황실에서 쓰는 자기 바닥에 전부 경덕 연호를 썼기 때문에 ‘경덕진’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경덕진은 송대에 제조된 ‘영청자’로서 널리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다. 원나라 때는 이곳에 부량자국, 명나라때는 어기창을 설치하여 경덕진은 명실상부한 ‘자기의 고장’이 되었다. 이곳은 또 한 차 시장으로도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중 략>

중기 이후에서 남송까지는 각화(刻畵), 인화 등의 장식이 대량으로 출현하여 청백자가 더욱 성행하였다. ▷청백자 화당초문 대접 / 북송 / 경덕진요 / 높이 7.6 / 입지름 20.9 / 굽지름 5.4 / 굽 바닥에 직경 4cm 가량의 원형 도침을 받친 흔적이 불그스름하게 나타나 있고, 세로 방향의 묵서로 정구(鄭口) 명문이 흐릿하게 남아있다. ▷청백자 잔탁 / 북송 / 경덕진요 / 높이 4.9 / 입지름 13.9 / 밑지름 7.7 / 편평한 전 부분에 가볍게 홈을 넣어 육화형을 표현한 우아한 형태의 잔받침이다. 밖으로 벌어진 다리의 접지면 또한 육화형으로 처리하였다. 또한 다리 측면에 여의두 모양 같은 안상을 만들어 장식성을 높였다. 다리 안쪽에는 내화토가 섞인 받침 자국이 있다.

참고 자료

『간추린 중국미술의 역사』,북경 중앙미술학원 미술사계 중국미술사교연실 편저/ 박은화 옮김 _ p237
『중국도자』국립 중앙 박물관 _ p223~321
『중국미술사』, 마이클 설리번 지음/ 한정희, 최성은 옮김 _ p241
『중국 역사 박물관』, 중국사학회 엮음/강영매 옮김 _ pp39, 94
동영상 : 스페셜.041121.(도자기 6부작 3편_이슬람의 유산) 12분 12초~16분 35초
논문 : 中國 景德鎭 陶磁가 朝鮮 靑畵白磁에 미친 影響 : 朝鮮 靑畵白磁長身壺를 중심으로 /저자 : 鄭敬弘 /출판년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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