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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 유교와 불교의 교섭

저작시기 2013.10 |등록일 2014.06.30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20페이지 | 가격 2,000원

목차

Ⅰ. 漢·唐·宋대 유불도 교섭과 성리학
1. 배경
2. 유교 부흥운동과 복성론復性論
3. 정주 성리학의 형성과 유불도 교섭
1) 우주론과 인성론
2) 수양론

Ⅱ. 고려 말 성리학의 수용과 그 사상체계

Ⅲ. 고려 말 유불도 교섭
1. 불자(佛者)들의 유교관
2. 유자(儒者)들의 도교관
3. 유자(儒者)들의 불교관

< 참고문헌 >

본문내용

Ⅰ. 漢·唐·宋대 유불도 교섭과 성리학

1. 배경

전국시대 통일 이후 분서갱유로 탄압을 받았던 유학은 漢왕조 이후 동중서에 의해 국교로 지정되어 국가의 통치이념에 반영되었다. 그러나 동중서의 학설은 음양가의 사상을 차용하여 유가경전을 재해석한 측면이 강하다. 동중서의 학설은 통치이념으로서 봉건종법의 사상과 제도를 유지하는데 반영되었는데, 이는 민본정치를 강조하던 공맹의 유학과 거리가 있었다. 한대 유학은 교화의 정치와 공리를 지양하는 생활태도 등 그 외양에서는 공맹의 사상을 이어받았으나, 그 속은 음양오행의 사상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는 수기지학修己之學인 공맹의 근본을 망각한, 정치학문으로서의 유학의 일탈을 초래하였다.
이것에 대한 반발로 당시 사상계는 극단적인 수기치인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으며, 이것은 도가사상의 부활로 이어졌다. 한대 이후 위진남북조 시대를 거치면서 도가사상은 세 가지 방향으로 나뉘게 되었다. 하나는 노장사상을 초월을 추구하는 의미로 해석하여 이후 불로장생을 추구하는 도교가 되었으며, 다른 하나는 산림에 은거하여 청정무림의 가르침을 담론하는 청담(淸淡) 사상이 되었다. 마지막 하나는 ‘부드러움을 지킨다’는 처세술 개념인데, 이는 정치상의 권모술수사상으로 나아갔다. 그 결과 유가경전에 노장사상이 혼합된 현학이 등장하게 되어 사상계의 주류를 이루었다.
하지만 현학 또한 이전의 가치규범을 부정하고 장생법술과 정치술수 등에만 치중하는 등 사상계의 대안으로써 한계를 드러내었으며, 이러한 현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유심론을 제기하는 사상가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당시 새롭게 유입된 사상인 불교와 교류하는 과정에서 도가의 無를 불교의 ‘열반(涅槃)’으로 해석하는 등 불교와 현학의 통섭을 추진하였고, 불교는 이 과정에서 도교와 함께 당대의 양대 사상체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唐대는 유․불․도 삼교를 모두 용인하는 개방적인 정책을 채택하였고 삼교는 병존하며 발전하였다. 불교는 활발한 사상 전개와 종파 수립으로 발전하고 있었고, 도교는 국교에 버금가는 대접을 받으며 출현 이래 가장 높은 위치에서 존중받게 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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