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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운동사] 농민운동의 전개 - 1910년대의 농민투쟁, 1920년대 농민운동의 발전, 농민단체의 출현과 소작인운동, 농민운동이 지방적·전국적 결합 , 농민조합운동의 활성화

저작시기 2014.06 |등록일 2014.06.18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9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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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1910년대의 농민투쟁
2. 1920년대 농민운동의 조직적 발전
3. 1920년 농민운동의 발전
4. 1920년대 농민운동의 발전 양상
5. 1920-1923년 농민단체의 출현과 소작인운동
6. 1924-1925년 농민운동의 지방적·전국적 결합
7. 1926-1929년 농민조합운동의 활성화
8.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1. 1910년대의 농민투쟁
러일전쟁에서의 승리를 계기로 조선을 사실상의 식민지로 장악한 일본제국주의는 조선경제를 식민지 구조로 바꾸기 위한 제반 기초 작업에 착수하였다. 1905년 이래 연달아 추진된 이른바 화폐정리사업, 재정정리사업, 帝室有 및 국유재산조사사업 등이 그것이다. 이와 아울러 일본 내 과잉인구의 해결, 식민지 지배와 대륙 진출을 위한 토착세력의 확보라는 다양한 목적 아래 일본인의 조선 내, 농업이민이 적극 추진되었다. 토지수탈의 대명사로 이름을 떨친 동양척식주식회사(이하 동척으로 약칭함)는 토지를 확보하여 일본농민을 이 땅에 이식하기 위해 설립된 것이었다.
본디 전남지방은 곡창으로서 오랜 동안 왕실을 비롯한 봉건 관료와 지주층의 수탈 대상이 되어 왔다. 같은 이유로 전남에 진출한 일본인들은 피폐 할대로 피폐한 농민들로부터 닥치는 대로 토지를 사들여 지주로 변신하였고, 소작료 수탈과 고리대를 이용하여 소유 토지를 확장해 나갔다. 남해안의 도서지방과 영산강 유역에는 왕실의 궁방전이 많았기 때문에 궁방전, 역둔토 등 한국정부의 출자지 등을 자산으로 하여 설립된 동척 농장도 다수 들어서게 되었다. 1910년 12월말 현재 강진, 나주, 남평, 영암, 함평, 해남 등지에는 100정보 이상 규모에 달하는 동척농장이 개설되어 있었다.
1910-1918년에 걸쳐 실시된 토지조사사업은 稅源의 확정. 확충이라는 측면과 아울러 급속히 확장되고 있는 일본인의 토지소유를 제도적, 법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다목적 사업으로 실시되었다. 이 과정은 수많은 소유권 분쟁을 불러일으켰다.

2. 1920년대 농민운동의 조직적 발전
1910년대 농민들의 투쟁은 식민지 농정에 대한 반대투쟁이나 토지수탈에 대한 항거가 대부분이었다. 결사, 집회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 가혹한 무단통치 아래 농민의 주체적인 단체는 결성될 수 없었고 일제 혹은 지주가 농민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조직만이 존재했다.

참고 자료

곽건홍, 「농민운동의 배경과 전개과정」,『순국』68, 1996
조영건, 「1920년대의 한국농민운동」, 『건대사학』2,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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