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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의 죽음과 혜경궁 홍씨의 진실

저작시기 2014.04 |등록일 2014.05.31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4페이지 | 가격 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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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사도세자는 아버지 영조에게 정신병이라는 이유로 뒤주에 갇혀 죽은 비운의 왕자로 유명하다. 이것은 한중록에 나와있는 기록이다. 그러나 한가지 의문이 있다. 과연 사도세자는 정신병으로, 그것도 아버지 영조에게 죽임을 당했을까? 아무리 정신병이 심하여 비행을 저질렀다고 뒤주에 가두어 죽일 정도로 영조는 잔인하고 무식한 사람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탕평책을 비롯한 나라의 안정을 도모한 성군이 아니던가? 정말로 아버지라면 세자의 병을 고치려 했지 뒤주에 가두어 죽이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세자는 영조가 그 누구보다 귀한 아들이었고, 다음 보위를 이어갈 중요한 세자였다. 이러한 이유로 사도세자를 정신병라는 이유로 죽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신병이 아니라면 어떤 이유로 죽게 되었을까? 세자가 태어났을 때 나라의 신하들은 임금보다 강했으며, 서로 당을 만들어 싸우고 있었다. 영조를 지지하던 노론은 영조의 아들 역시 마땅히 노론을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노론의 반대세력 소론이 세자를 지지하고, 손잡는다면 노론에게 불리하게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세자는 태어나서부터 노론에 지지를 받으며, 당파싸움에 말려들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세자가 자신의 정치이념을 결정하였을 때 '나주벽서사건' 이 일어난다. 나주벽서사건은 을해옥사라고도 한다. 이는 에 나주 괘서의 변 사건이 을해년에 일어난 사건이다. 사건 수사에 이 연루되면서 이 득세하게 된다. 의 균형이 깨어지는 것이다. 득세한 노론은 당시 대리청정하던 사도세자에게 소론 잔당을 잡아들이라고 상소를 하자 노론과 사도세자의 균열이 생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노론이 공세가 시작되고, 과 의 불행한 결론으로 가는 길목의 시작이다. 간단하게 말하여 불완전한(남인과 소론 강경파를 배제한) 영조의 탕평책에 불만이 드러난 사건으로 이 때문에 소론계 중신들이 몰살당한다. 흥미로운 것은 여기서부터 세자와 영조는 갈라지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노론은 이를 이용해 소론을 몰살하려 했지만 뜻밖에 세자가 이를 막고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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