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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사회 - 상계동 올림픽, 아픈추억의 공간

저작시기 2011.05 |등록일 2014.05.28 | 최종수정일 2015.07.01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2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건축과 사회를 수강하며...

개발에 의한 아픔이 있는 사회

과거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공간이 정동

조사하여 발표한 자료 입니다.

목차

1 상계동 올림픽
1) 이면과 내면의 불편한 진실
2) 누구를 위한 올림픽인가?
3) 20여년 후 우리세상은

2 기억의 공간 정동과 궁궐에서의 황후에 대한 추억
1) 명성황후는 누구인가?
2) 명성황후 시해 이전의 조선과 주변 정세
3) 러시아의 한국에 대한 인식
4) 일본의 대응과 한국에 대한 인식
5) 왕비의 ‘인아거일(引俄拒日)’과 그 내막
6) 미우라의 부임과 이노우에의 행적
7) 일본군의 경복궁 습격과 왕비시해의 현장
8) 열국의 대응
9) 일본의 세력 회복과 고종의 곤경
10) 러시아의 대일 대응과 아관파천
11) 아관파천 직후 조선조정의 상황

3 결론

본문내용

2011년 3월 상계동 올림픽이라는 비디오 시청을 했다. 유난히 상계동 올림픽에 내 눈의 시야에 들어왔다. 88 서울 올림픽으로 온 나라가 들 떠있고 대한민국 사상 첫 유래 없는 올림픽 개최에 TV 와 언론 매체에 관심이 쏘여 있었다. 그러나 다른 이면에서는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하고 있었다. 23년 전 비디오카메라 하나로 거친 편집과 투박한 음질은 지금에 와선 지루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비디오 영상물이든 다중매체 영상물이든 간에 ‘작가가 관객들에게 강하게 어필하는 뜻을 이해하는 순간에 또 하나의 영화를 보는 이의 감동을 불러올 수 있을 거라 여겨진다.’ 라고 믿는 나이기에 처음 보는 이 영상물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걸 보기 전 까지 이런 세상이 존재했다는 걸 어렴풋한 말로만 전해 들었을 뿐 더러 자본주의의 사회에 길들여진 나는 그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중 략>

외교공문 날조와 아울러 일본인이 왕비시해에 가담하지 않았고 궁궐에는 일본군이 없었다고 한 그의 주장이 너무나도 명백하게 위증으로 드러났고, 미우라에게로 혐의가 쏠리기 시작했다. 일본정부는 이때 미우라와 사건가담자들을 소환하는 한편, 이노우에를 ‘왕실위문사’라는 이름으로 다시 파견한다. 일본으로 소환된 미우라를 비롯한 사건가담자들은 국제여론의 악화로 인해 히로시마 재판소에 기소되나 재판 후 증거불충분으로 모두 풀려나고 있다. 이후 이들 대부분은 사회적 요직을 차지하면서 부와 명성을 거머지게 된다. 한낱 군인에 불과하던 미우라는 이 사건 이후 일본 정치계의 거두로 성장하며, 한성신보사의 아다치 겐조는 내무부 장관에, 하버드 출신의 작가 시바시로는 7번이나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등 왕비시해에 참가했던 일본인들은 국내에서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정치적, 사회적 거물로 성장해간다.
이후 사태는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려는 열국 대표와 이에 제동을 걸려는 일본정부 사이에 힘겨루기 양상으로 전개되지만, 영․미 등 각국 정부는 일본과의 관계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조선주재 외교관들의 이 사건에 대한 간여를 원하지 않았고, 직간접 적으로 씰, 알렌, 힐리어 등의 반일적인 행동을 저지하였다.

참고 자료

명성황후시해와 아관파천 -이민원(국학자료원)
명성황후는 일본정부가 시해했다 - 최문형(지식산업사)
KBS 역사스페셜 “명성황후시해사건 러시아 보고서”
수요기획 “되살아나는 명성황후”
뮤지컬 명성황후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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