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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사] 차의 역사와 커피의 역사 - 차와 커피의 어원과 전래과정,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차문화, 우리나라 커피와 다방의 역사 등

저작시기 2014.05 |등록일 2014.05.16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2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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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차의 역사
① 차의 어원
② 차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역사
③ 고려시대의 차문화
④ 조선시대의 차문화 - 차문화가 쇠퇴한 까닭 네가지

2. 커피의 역사
① 커피의 어원
② 커피의 전래 과정
③ 우리나라 커피와 다방의 역사
ㄱ 식민지 시대 커피 (이효석, 카페의 모습)
ㄴ 1950년대 다방의 문화
ㄷ 1970년대와 DJ 문화
ㄹ 1980년대의 다방문화
④ 된장녀와 고추장남자의 논쟁
⑤ 스타벅스 커피 무엇이 문제인가?

본문내용

우리나라에 차나무가 전해진 것은 흥덕왕(興德王) 3년(AD828) 12월 김대렴(金大廉)이 사신으로 당나라에 갔다가 차나무의 종자를 가져다 지리산(地理山- 지금은 地異山)에 심어 번성시켰다는 기록이 있으며, 신라의 화랑(花郞)들에게도 차 생활(茶生活)이 있었다는 기록 등으로 미루어 통일신라시대 이후부터 꽃피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 때에는 재상(宰相)이나 장군이 서거(逝去)하면 임금은 부의(賻儀)로서 차(茶)를 하사(下賜) 했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도 당시 차는 귀중하게 취급되었으며, 이조(李朝)에 와서는 차를 엽전(葉錢)처럼 한 줄에 꿰어두고 몸살이나 감기에 걸리면 달여 마셨다고 하며 이것을 청태전(靑苔錢), 또는 전다(錢茶)라고 했다.

<중 략>

1930년대에 주로 일본인에 의해 다방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방은 서민들이 많이 즐겼고 실 업자와 같은 힘 없는 이들도 쉬어가는 공간이였다.
다방은 서울의 명물로 자리잡게 된다. 골목마다 다방이 없는 곳이 없었고, 이름도 처음에는 다방이었다가 다음에는 다실(茶室), 찾집으로 불리워졌다. 또, 우리나라에 카페가 등장한 때는 서울에 다방이 생겨났던 시기와 비슷한 무렵이었다. 카페가 충무로 2가 큰길에 일본의 아카다마 지점으로 처음 문을 열었고, 같은 동네에 '명과'라는 다방이 일본 명치제과의 지점으로 첫 출발선을 끊었다. 초기에는 제과점이면서 홍차나 커피도 함께 팔았는데, 차츰 커피 맛을 찾아 모여드는 손님 때문에 다방으로 변모하였다. 이 다방이 당시 대중들로 부터 인기를 끌자 그 건넛집에 '금강산'이라는 다방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중 략>

된장녀는 최근 생겨난 인터넷 비속어다. 외모와 학벌 등을 무기로 남자에게 의존해 명품 선물을 받고 고급 레스토랑과 커피 전문점이나 들락거린다는 일부 몰지각한 여성을 ‘X인지 된장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비하한 신조어이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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