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김유신 황산벌전투

저작시기 2010.10 |등록일 2014.01.13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4페이지 | 가격 500원

목차

Ⅰ.서론
1. 내가 김유신을 선택한 이유
Ⅱ.본론
1. 김유신의 생애
2. 김유신의 황산벌전투
3. 김유신의 황산벌전투에 대한 비판적 시각

Ⅲ.결론
1. 맺음말

본문내용

Ⅰ. 서론
한국고대사 수업을 들으면서 과제로 처음으로 논문이라는 것을 써보게 되었다. 솔직히 논문을 쓴다는 것은 나랑은 먼 얘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쓸려고 하니 막막하였다.
주제는 내가 원하는 인물이나 사건, 유물 중 골라 그것에 대해 쓰는 것이었다. 처음에 누구에 관해 쓸까 고민하며 자료를 찾다가 김유신에 대해 적어보기로 하였다. 그 이유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김유신이 절대적으로 제대로 된 정책 아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고 생각하고 있고 또한 김유신이 정말 반듯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역시나 최근에 드라마에서도 김유신은 정말 바르고 자신의 일을 열심히 수행하는 사람으로 그려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내가 과제를 위해 조사를 해보니 꼭 자신의 자질만을 가지고 살아간 사람은 아닌 듯 하였다. 그 중에서도 난 김유신의 업적 중 황산벌 전투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내가 업적 중 굳이 황산벌 전투를 선택한 이유는 가장 많은 생각을 가지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Ⅱ. 본론
그럼 먼저 김유신의 생애에 대해 알아보면 김유신은 595년(진평왕 17년) 에 태어나서 673년(문무왕 13년)에 세상을 떠났다.김유신은 용맹과 지략이 뛰어난 신라의 명장으로서 가야 김수로왕수로왕(首露王, 42년?[1] ~ 199년, 재위 42년 ~ 199년) 또는 김수로(金首露)는 가락국 즉 금관가야의 시조이자 김해 김씨의 시조이다. 일명 수릉(首陵)으로 불리기도 한다.
의 12대손이다. 15세 때 화랑이 되어 몸과 마음을 닦았다. 학문이 깊고 무예가 뛰어난 그는 신라의 오랜 꿈인 삼국 통일을 위해 의지를 키워나갔다. 한 때 천관이라는 기생에게 마음을 빼앗겨 술집을 자주 드나들었다. 이 사실을 안 어머니로부터 크게 꾸지람을 듣고 깊이 반성한 김유신은 자신을 태운 말이 술집 문 앞에 가서 멈추자 말의 목을 베어 버렸다 한다.

참고 자료

신라 金庾信系 의 정치적 위상과 추이/김수미 지음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