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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금동대향로의 가치 - 향로에 담긴 사상을 중심으로

저작시기 2013.05 |등록일 2013.12.12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7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백제 금동대향로에 대한 보고서입니다.
사상을 중심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백제금동대향로 분석
ⅰ. 백제금동대향로의 제작시기
ⅱ. 백제 작품이라는 근거
ⅲ. 뚜껑
ⅳ. 몸체
ⅴ. 다리

Ⅲ. 백제금동대향로를 통해 본 백제의 사상
ⅰ. 향료와 향로
ⅱ. 연화화생사상
ⅲ. 신선사상
ⅳ. 로제트 사상

Ⅳ. 꼬리말

본문내용

1993년 12월 2일 부여의 나성(羅城)과 능산리 고분군 사이 서쪽 골짜기에 있던 유적지 중 하나인 공방 터의 수조(水槽) 구덩이에서 백제왕실에서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향로가 발견되었다. 길이 125cm, 폭 90cm, 깊이 50cm의 수조 웅덩이에 겹겹이 쌓인 기와조각더미 밑에서 발견되었다. 발굴 당시 진흙에 덮여 있어서 진공상태로 보존될 수 있었기 때문에 녹이 거의 슬지 않아 상태가 매우 양호하였다. 백제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爐)는 백제인들의 사상과 종교관, 그 시대의 문화를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백제금동대향로는 1996년 5월30일에 국보 제287호로 지정되었고,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소장중이다. 발견당시 서울대 박물관장이었던 안휘준은 “이 유물은 한마디로 유례가 없는 경이적인 걸작이며 이것의 발견은 국가의 경사”라고 극찬하였다.
높이 62.5cm, 몸통의 최대지름은 19cm이며, 무게가 11.8kg인 대형 향로이다. 용과 봉황의 비중이 상당히 두드러져 있고, 크게 뚜껑, 몸체, 다리부분으로 나눈다. 받침과 몸체, 뚜껑과 봉황장식을 제외하고는 이어 붙인 흔적이 없다. 뚜껑과 몸체는 정교하고 섬세한 무늬표현이 가능하도록 밀랍으로 틀을 만들고, 그 위에 석고나 부드러운 진흙을 부어 만든 거푸집에 구리와 주석을 혼합하여 녹인 후 이를 부어 주조한 것으로 보인다. 문양의 섬세한 표현을 위해 아연을 의도적으로 첨가했을 가능성도 있다. 주조된 향로의 표면에는 수은아말감법을 이용하여 10에서 20마이크로미터정도 되는 일정한 두께로 정교하게 도금되어있다. 하단은 한 마리의 큰 용이 용틀임을 하는 형상으로 몸통을 받들고 있다. 몸통은 갓 피어나려는 연꽃봉오리의 모양을 하고 있으며 꼭대기에는 봉황장식이 있다. 뚜껑 및 몸체의 아가리에는 음각당초문띠가 있다. 이 향로 전체에는 신선으로 보이는 인물 18인, 동물 65마리가 표현되어있다.
이 글에서는 위대한 백제인의 유산인 백제금동대향로를 분석해보고 그것을 통해서 알아볼 수 있는 백제인의 사상과 금동대향로의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참고 자료

국립중앙박물관, 「금동용봉봉래산대향로(金銅龍鳳蓬萊山大香爐)」, 통천문화사, 1994
국립부여박물관, 「백제금동대향로와 창왕명석조사리감」, 통천문화사, 1996
서정록, 「백제금동대향로」, 학고재, 2001
김기엽, 「백제금동대향로에 나타난 복식에 관한 연구」, 국립부여박물관, 2004
최병헌, 「한국사시민강좌」, 『제 23집』, 일조각, 1998
충청남도, 「백제의 종교와 사상」, 충청남도, 1994
공주대학교 박물관, 「백제의 조각과 미술」, 공주대학교, 1991
전영래, 「향로의 기원과 형식 변천」, 『백제연구 25』,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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