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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운동의 원인과 발생

저작시기 2013.06 |등록일 2013.06.28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3페이지 | 가격 3,000원

목차

1. 농민운동의 원인과 발생

2. 결론

본문내용

1. 농민운동의 원인과 발생
19세기에 상품화폐경제와 농민층 분해가 가속화되는 과정에서 국가권력과 지주층의 농민수탈 및 자연재해는 농촌 과잉 인구 등으로 생계유지에 곤란한 수많은 빈농들을 양산하였다. 억압과 굶주림에 허덕이는 이들은 농업 노동자로 전락하거나, 농촌을 떠나 날품팔이, 노점상과 같은 도시빈민,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행상, 광부, 승려, 걸인 등으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조건하에서 농민들은 1876~77년과 1988~89년에 발생한 전에 없던 대흉년을 비롯해 만성적인 자연재해로 인해 토지로부터 내몰렸고, 재해에다 과중한 조세부담을 못 이겨 토지를 버리고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이 속출하였다. 특히, 국가의 수탈은 농님들의 불만과 몰락, 유민화를 초래하는 구조적인 원인으로 작용하였고, 기존 생계수단에서 이탈된 빈민층의 광범한 축적은 곧 사회불안과 체제동요를 촉진하고, 화적집단의 무한한 공급원이 되었던 것이다. 19세기 주요한 사회현상의 하나였던 화적은 삼남 농민항쟁이 일어난 1862년 무렵부터 점차 항상적이고, 전국적인 현상으로 나타났을 뿐 아니라 장기화·광역화되는 추세였다. 이 시기에 화적이 급증한 데에는 당시 사회불안과 민중들의 동요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19세기 중엽 화적의 구성은 자립적 기반이 불안정한 빈농 또는 농업노동자, 영세상인, 도시빈민, 거지, 승려 등이었다. 이들을 구성원으로 집단적인 동아리를 이루는 화적의 규모는 수명에서 수백 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였고, 이들 소단위 집단은 두목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이합집산을 거듭하였다. 화적들의 주 약탈대상이 된 것은 현지에 거주하는 부호, 상업에 종사하던 여각, 객주, 상인, 행상, 주막, 지방관과 아전과 같은 관리들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빈번한 약탈대상층은 부호들이었고, 이들은 대부분 거대지주이거나 이름 있는 양반사대부였다. 이들의 활동지역은 특정지역에 국한되지 않았고, 화적이 사용한 무기는 주로 총과 칼, 창이었다. 특히, 화적들은 신주를 탈취하거나 신변을 위협하는 서찰을 보내거나, 무덤을 파헤치는 굴총과 같은 방법으로 활용하였다.

참고 자료

신일철, 『동학사상의 이해』, 사회비평사 1995
이영호, 『동학과 농민전쟁』, 혜안,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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