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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건축사) 르네상스시대의 도시 - 피렌체에 대해서

저작시기 2011.06 | 등록일 2013.06.11 파워포인트파일 MS 파워포인트 (pptx) | 23페이지 | 가격 3,500원

목차

1. 르네상스란?
2. 피렌체 선정이유
3. 피렌체 도시의 구조
4. 피렌체의 베키오 다리와 바사리통로
5. 결론

본문내용

1. 르네상스란?
오늘날 통념적인 르네상스시대의 시기는 피렌체대성당의 두오모를 착공한 1420년대를 상한으로 하고 있다. 미술사의 통설로는 1420년 건축가 F.브루넬레스코가 고대연구의 성과를 최초로 실현한 피렌체 대성당의 두오모의 공사가 기공된 무렵부터 1530년대경 고전적 미술의 중심이 마니에리스모로 옮겨 가는 연대까지의 이탈리아예술에서 일어나는 운동의 시대라고 한정시켜 좁은 범위로 일컫는다.
르네상스가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배경
1) 이탈리아에선 귀족계급과 부유한 부르주아계급 사이의 구분이 없어졌다.
2) 이탈리아가 서유럽의 다른 어떤 지역보다 고대 로마시대의 유적이 산재하는 등 고전시대의 친밀감을 가지고 있었다.
3) 도시의 자부심과 사유재산제가 잘 발달되어 예술에대한 후원의 기회가 많았다.

<중 략>

원래 베키오 다리는 교량의 기능 외에도 어물전, 푸줏간의 가판점이 있어서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장을 보는 곳이었다. 아르노강에서 잡아 올린 생선을 직판하거나 육고기 및 생선을 썰어 가공한 뒤 비린내 나는 찌꺼기를 물로 씻어 낼 수있는 가장 적절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점들이오늘날의 귀금속상으로 바뀐 것은 1593년 메디치가의 훼르디난도 대공의 명에 의해서였다. ‘바사리 통로’로 이동할 때, 어물전과 푸줏간에서 올라오는 악취를 견딜 수가 없었던 대공은 훈령을 통해 베키오 다리의 상가 업종을 변경하고 거리를 재정비한 것이다.
문화적인 맥락으로 비추어 볼때 주변의 저택이나 미술관 등을 연결해주는 예술활동인 장인들의 공방이나 상점이 옳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훼르디난도 대궁은 귀족적 이미지를 확립하고 재정적인 측면에서도 큰 몫을 할 수 있는 귀금속상을 선택하였고 이는 피렌체의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큰 공헌을 한 셈이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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