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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의 신학과 삼위일체 신학

저작시기 2013.05 |등록일 2013.05.11 한글파일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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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이 논문에서 로스키는 정교회 신학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인 부정의신학을 연구하고 있다. 이 논문은 감춰진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초월하신 분이심, 그 분에 관해서는 부정적인 표현이 적합하다는 것, 반면에 이 신비하신 하나님은 본질에 있어서는 아니지만 에너지 안에서 신비하게 알려지고 경험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대한 지식을 얻는 부정의 방법은 최종적으로 지식의 대상이실 수 없는 분에 대한 최고의 무지에 의해서 일종의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서, 하나의 대상이 획득되고자 하는 긍정적인 속성들을 점진적인 것으로 제거하는 정신의 상승적 작업이다.
지성의 한계 안에 남아 있으면서 단지 우리의 정신과 정신이 획득하고자 하는 실재 사이에 근본적인 일치가 결여되어 있다고 선언하거나, 또는 이해의 한계를 초월하며 접근 할 수 없는 본지리을 지니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무지에 지성보다 탁월한 신비적 지식의 가치를 부여해주든지 간에, 인간이 이해하는 데 실패했다는 의식이 아포파시스(apophasis), 혹은 부정의 신학(negative theology)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의 공통 요소가 된다. 지적인 실패의 의식으로서의 부정의 신학이라는 요소는 대부분의기독교 신학자들 안에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중 략>

13세기말경 리용 공의회 이후에 콘스탄티노플에서 논의가 진행되는 중에 성부로부터만 발현하는 성령의 위격적 실존과 성자들 통한 그의 영원한 광휘 사이의 구분이 형성되었음은 흥미로운 일이다. 여기에서 교리적 연결을 감지할 수 있는데, 성령이 성부로부터만 발현한다는 교리의 옹호로 말미암아 “아들을 통하여”라는 구절의 의미를 결정해야만 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시간 안에서의 신의 섭리는 영원한 현시를 표현한다. 그러나 영원한 현시가 반드시 피조물과의 관계에 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피조물들의 존재와는 상관 없이, 삼위일체는 그 영광의 광채 안에서 현시된다. 영원 전부터 성부는 “영광의 아버지”(엡1:17)이시고, 말씀은 “그 영광의 광채”(히1:3)이시고, 성령은 “영광의 영”(벧전4:14)이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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