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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구빈법의 특징

저작시기 2012.11 |등록일 2013.05.09 한글파일한글 (hwp) | 3페이지 | 가격 2,000원

목차

1) 배경
2) 정부에 의한 빈민구제 법의 과정
3) 빈민관과 국가와 지배계층의 빈민보호에 대한 의식관.

본문내용

1601년 엘리자베스 법이라 불리는 구빈법은 복지국가를 향한 국가개입이 시행된 최초의 법으로 평가되지만, 18C 이후 자유주의의 등장과 함께 16C 이래로 널리 유포되어 있는 사고와 정책에 대해 비판 받으면서, 구빈법은 개정된다. 지속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사회보장 이념과 대조되는 구빈법의 배경인 16C 영국을 살펴보면서, 이 시기 빈민의 권리와 의무는 어떻게 인지되었으며, 국가, 부자, 권력층의 빈민보호에 대한 의무감과 역할은 무엇 이였는지 대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1) 배경
16C 이래 19C 까지의 영국의 구빈제도의 특성은 억압을 통한 구제였다. 가난의 원인을 노동자들이 일하지 않으려는 나태한 노동습관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빈민의 잘못된 노동습관인 나태심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강제노동과 처벌 등의 억압이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빈제도 특성의 시작은 13C 부터라고 볼 수 있다. 1315~1321년의 대홍수로 시작된 기근과 1348년 ~49년의 두 번의 흑사병으로, 영국 국민, 노동자수는 줄어들게 된다. 이로 인하여 노동력을 구하기 힘들어진 지주계급들은 노동력 공급을 위해 왕과 의회에 자신의 재산이나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자들에게 필요할 경우 노동력을 제공받을 수 있는 입법을 요구하게 된다. 이 법은 만약 지주들에게 노동력 요구를 받고도 응하지 않을 경우에는 체포되어 투옥되는 강제력을 가지고 있었다. 지주들에 의한 노동력 통제, 강제노동이 가능해 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 법은 강제적 이였지만 노동자들은 지주에 의하여 일자리와 경제적 보장은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14C 엔클로저 운동으로 수많은 농민들은 일거리를 찾아 농촌을 떠나게 된다. 그러나 일거리를 찾을 수 없었던 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해 구걸이나 절도에 의존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자리를 제공하지 않는 지주들에 의한 노동력 통제는 상실되어갔으며, 걸인과 빈민, 절도가 계속 늘어나자 왕과 의회가 개입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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