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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협정, 누구의 작품인가

저작시기 2013.04 |등록일 2013.05.09 한글파일한글 (hwp) | 8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현재 빚어지고 있는 외교갈등, 한미-한일-한미일의 외교관계는 한일협정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시발점인 한일협정의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한일간의 협정이지만 미국의 역할과 협정배경에 대해 살펴보는 리포트이다.
특히, 한일 관계가 아닌 국제 관계의 시점에서 미국이 한일관계 정상화를 기획하게 된 배경을 면밀히 살펴볼 것이다.

목차

Ⅰ. 서론

Ⅱ. 한․ 일 협정 이전의 국제관계(한·일 관계정상화 추진 배경)

Ⅲ. 한․ 일 협정 전개과정
1. 이승만 정부 시기(1948-1960년)
2. 허정 과도정부 및 장면 내각 시기(1960-1961년)
3. 박정희 정부 시기(1961-1965년)
4. 한․일 양국의 반대운동
1)한국의 반대운동
2)일본의 반대운동
Ⅳ. 결론

본문내용

2008년 이후 한국과 미국은 키 리졸브(Key Resolve)로 명명된, 한반도 유사시 미군 증원 병력의 효율적인 전개와 유기적인 통합작전 능력 향상이 목적인 연례 연합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일본도 참가하는 연합 해상훈련도 해마다 실시하고 있다.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부터는 제주 남방 해상에서 수색·구조, 해양 차단작전 등 인도적 목적의 훈련이 진행되고 있다. 미군을 중심으로 한 삼국 공동 군사훈련이 연례행사로 실시되고 있는 것인데, 그 출발점은 바로 한·일 협정이라고 할 수 있다.
1965년 6월 22일 협정 조인, 12월 18일 한 일 비준서가 교환되면서 14년 동안 끌어왔던 한? 일 관계가 ‘정상화’되었다.

<중 략>

둘째, 일본의 협상전략 때문이다. 일본이 사죄해도 시원찮을 회담이었는데 오히려 對韓 청구권, 구보타 망언 등으로 한국을 흔들어 놓으면서 회담을 주도하였다. 한국의 22억 달러 청구보다 2배 이상 많은 47억 달러를 요구하면서 한국의 對日 청구권이 아닌 일본의 對韓 청구권이 회담의 핵심의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또한 구보타 망언은 한국과 한국 국민들을 우롱하고, 스스로 회담을 결렬시키는데 일조했다.
셋째, 한국 정부의 한계 때문이다. 친일파에 의해 주도되는 한국 정부가 일본을 상대로 배상 요구를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중 략>

또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보상 문제서부터, 작게는 일본군위안부, 사할린동포 문제, 대한민국 정부의 한반도 유일합법 정부 조항 논란, 문화재 반환, 재일교포 법적 지위, 독도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한일 과거사`라는 이름으로 제기되고 있는 미해결 현안들의 불씨가 되어버렸다.
최근의 한?일 관계 또한 양국 정상 간의 미래지향적 합의에도 불구, 진정한 화해와 공통의 역사인식을 공유하지 못한 채 갈등과 대립은 여전히 잠복상태로 남아있다. 이처럼 매듭이 풀어지지 않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가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잘못된` 한일협정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참고 자료

한일협정과 미국의 압력, 이재봉, 원광대학교, 2009.
한·일협정 체결과 지역통합전략의 현실화, 박진희, 국사편찬위원회, 2003.
한일협정을 다시 본다, 민족문제연구소, 아세아문화사, 1995.
한일회담, 그 전모를 밝힌다, 김필동 역, 도서출판 계명,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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