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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의 단군조선 왜곡

저작시기 2008.04 |등록일 2013.05.07 한글파일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1,500원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일제 강점기의 단군 인식
2. 왜곡의 목적
3. 왜곡의 과정
4. 단군조선 왜곡에 따른 대응

Ⅲ.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단군 신화는 우리 역사의 출발점으로써 반만 년의 유구한 우리 민족사의 첫머리를 장식하였다. 단군이 우리의 첫 역사를 상징하는 만큼 일제강점기 때의 일제는 단군에 관한 모든 것을 방관할 리 만무하였고 여러 방법으로 왜곡하고 날조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제의 단군조선 왜곡의 목적과 과정 등을 알고 단군조선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깨우칠 필요성이 있다. 그럼 지금부터 단군 인식에 대한 일제강점기의 시대 상황과 일제의 단군조선 왜곡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다.

Ⅱ. 본론

1. 일제 강점기의 단군 인식

대한제국시기 민족과 국가가 위기 상황에 놓이게 되자 단군에 대한 인식은 더욱 높아졌다. 이 시기의 민족주의적 애국 운동은 단군 숭배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특히 단군을 구심점으로 삼은 대종교는 이후 1910년대까지 민족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단군이 미족 운동의 정신적 구심점이 됐기 때문에 일제는 단군을 부정하려 했다. 그러나 민족주의 진영에서는 단군이라는 구심점 없는 민족정신의 확립은 있을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에 단군 말살론을 적극 반대했다. 대한제국시기에서 일제 강점기까지 단군교 ? 대종교 운동 및 ‘단군민족주의운동’이 일어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특히 단군 및 단군조선 역사가 대종교 계통의 신채호 등에 의해 새롭게 인식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 시기 민족주의자들은 만주의 지배 족속이었던 여진 ? 거란 ? 몽골 등을 모두 배달족이라는 이름 아래 동족으로 간주하고 배달족 전체의 시조를 단군에서 찾으며 단군 이래의 고유 신앙을 민족 문화의 핵심으로 높이 선양했다. 당시 박은식, 신채호 등 민족주의 역사가들의 단군 인식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초기 민족주의 역사가들이 그린 고조선사의 모습은 만주와 한반도를 아우른 광대한 영역의 단군조선제국이었다. 고조선의 수도 또한 만주 지역에 있었고 고조선 멸망 후에 세워진 한군현(처음에 낙랑군, 진번군, 임둔군, 현도군 등 4개의 군이 설치되어 한사군이라고도 부른다)의 위치도 남만주 지역이었음을 강조했다. 나아가 ‘웅대한 고조선’의 역사상을 통해 민족정신을 진작시키고 조국 광복을 되찾자는 민족 운동 차원에서 고조선사가 연구됐다.

참고 자료

박선미, 「근대사학 이후 고조선사 연구의 현황과 쟁점」, 고려사학회, 2006
세계 역사 문화 연구소, 『한국사의 단군 인식과 단군 운동』, 국제평화대학원대학교, 2006
송호정, 『단군, 만들어진 신화』, 산처럼, 2004
이형구, 『단군과 단군조선』, 살림터, 1995
한영우, 『다시 찾는 우리 역사』, 경세원,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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