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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지도의 유래와 관련된 가설들과 견해, 헌상설, 하사설, 증여설, 백제, 칠지도의 이동 과정

저작시기 2012.11 |등록일 2013.05.03 한글파일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일본 사회와 문화 (500년경 백제와 일본 간의 교류와 일본 내 백제의 흔적에 대한 강의) 과목에 제출하여 우수 레포트로 뽑힌 자료입니다
칠지도의 비문에 대해 알아보고 칠지도가 어떻게 하여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는가에 대한 가설들을 정리하고 제 나름대로의 견해를 담아보았습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홍윤기 교수님께서 쓰신 “일본 속의 백제 구다라”를 읽다가, 칠지도(七支刀)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칠지도에 ‘왜왕은 백제의 후왕(侯王)’이라는 명문이 존재한다.” 여기서 후왕에 대하여 해석이 매우 다양한데, 이는 다양한 학설들과 함께 뒤에서 다루도록 할 것이다. 나는 몇 달 전 칠지도를 국내에서 복원하였다는 뉴스-찾아보니 2012년 3월 19일자, 충남 백제 역사문화관에서 복원하였다는 뉴스-를 보았고, 그 기억을 떠올리며 칠지도에 대해, 그리고 칠지도를 둘러싼 학계의 여러 학설들을 조사해 보았다.
칠지도에 관한 학설들은 굉장히 많지만, 크게 세 가지 학설로 추려볼 수 있다. 칠지도를 백제가 일본에 하사하였다고 보는 하사설, 백제가 일본에게 바쳤다고 보는 헌상설, 그리고 헌상도 하사도 아닌 외교를 위한 선물로 주었다고 보는 증여설이 있다. 우선 다양한 학설들이 모두 전제로 깔고 있는 사실만을(형태나 상감법에 대한 건 우선 논외로 치도록 하겠다) 찾아보았다. "본래 육차모(六叉, ろくさのほこ)라는 이름으로 전해져 왔으나, 1873년 이소노카미 신궁의 대궁사(大宮司) 스가 마사토모(菅政友, 혹은 간 마사토모)가 칼날에 새겨진 명문을 발견하면서 칠지도로 학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1953년에 일본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이소노카미 신궁에 소장되어 있다." 두산백과사전, (주)두산, 1996
여기까지는 학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여기까지 라는 건 이 이후부턴 모두 다르다는 걸 의미한다. 칠지도는 그 자체로 고대 한일 교류의 중요한 단서 내지는 증거가 되기 때문에 갑론을박이 굉장히 활발하게 벌어진다. 그럼 지금부터 세 가지의 학설을 소개해 보겠다.

참고 자료

김창호 -「백제 칠지도 명문의 재검토 - 일본학계의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반론 (3)」
스가 마사토모(菅政友) - 임나고(任那考), 1893
홍성화 - 이소노카미신궁(石上神宮) 칠지도에 대한 일고찰",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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