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재중한인사회의형성과 변화,일본의제국주의,만주,간도,연변조선족의자치주의

저작시기 2013.05 |등록일 2013.05.01 한글파일한글 (hwp) | 27페이지 | 가격 2,400원 (20%↓) 3,000원

목차

① 만주란?
② 간도란?
③ 후에 간도문제로 이어지는 백두산정계비 논란
④ 한인의 만주 이주 배경
⑤ 청 정부의 대응
⑥ 조선 정부의 대응
⑦ 독립운동사적 성격
⑧ 한인사회 인구와 특징

본문내용

만주란 지금 중국의 동북지방, 즉 중국 요령성, 길림성, 흑룡강성, 내몽고자치구를 포함한 지역을 말한다. 만주는 역사적으로 오랜 옛날부터 선비족, 거란족, 여진족, 말갈족, 몽고족 등 많은 민족의 터전이었다. 또한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가 자리 잡았던 곳이기도 하다. 다양한 민족이 터전이었던 만주는 청의 등장으로 중국의 영토로 편입된다. 청은 백두산 부근과 압록강 두만강 이북 지역을 조상들의 발원지라고 하여 일반인들의 거주나 출입을 엄금하는 봉금 정책을 펼쳤다. 그래서 만주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곳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기아와 도탄에 빠진 중국 농민들과 계속되는 자연재해와 관리들의

<중 략>

광복 직후 동북지역은 지역적인 특성으로 인해 사상 대립의 여파로 인한 세력다툼의 격전지였다. 국민당의 수복구와 공산당의 해방구로 타의로 인해 나뉘어진 한인들은 국민당과 공산당의 정책차이로 인해 일부는 귀환하고 일부는 정착하게 되고 나머지는 피난민이 되기도 하였다. 국민당이 점령한 수복구내의 한인들은 일제 강점기 혹은 그 이전부터 가꾸어 놓았던 삶의 터전을 뺏기고 반강제적으로 대부분이 귀환하게 되고 나머지는 피난민이 되어 공산당의 해방구로 가게 되었고, 공산당은 한인들의 정착을 유도하는 정책으로 한인들의 생계를 유지시켜주고 자신공산당 역시 한인들을 통해 동북지역에 기반을 다질 수 있게 되었다

<중 략>

요컨대 `거독월간`을 통해 볼 때 `만주사변` 전후 만주와 화북의 도시에 거주한 다수 한인들이 불법적인 아편과 마약의 밀매에 종사함으로써 중국인과 중국 당국의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재중 한인에 대한 중국인이나 중국 당국의 인식 역시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현상 속에서 모든 책임을 한인에게 지우지 않고 본질적인 이해에 도달하였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재중 한인에 대한 이 같은 인식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후 항일을 위한 역량을 집중하는데 있어서 뿐만 아니라 한중간의 협력에도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참고 자료

손염홍 (박사학위논문) 北京지역 韓人사회(1910~1948년) 연구 제1장 한인사회의 형성과 민족운동 제1절 한인사회의 형성과 기반 1. 한인사회의 형성
황선익 (박사학위논문) 연합군총사령부의 해외한인 귀환정책 연구 中2. 해외 한인에 대한 인식과 처리 (p33) 1) 해외 한인의 국적에 대한 법률적 검토 (p34)
박강 (학술지명 : 한국민족운동사 연구) 20세기 전반『拒毒月刊』을 통해 본 중국인의 재중 한인 인식 = The Chinese understanding of migrant Korean in China from Judu Yuekan in the first half of 20th century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