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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의 대립과 사회주의 체제로의 이행

저작시기 2013.04 |등록일 2013.05.01 | 최종수정일 2016.07.19 한글파일한글 (hwp) | 8페이지 | 가격 1,800원

소개글

미국과의 대립과 사회주의 체제로의 이행 ★ 미국 대립 ★ 한국전쟁 미국 대립 ★ 사회주의 체제 이행 ★ 사회주의 신민주주의에 관한 자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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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신민주주의`
(1)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공동 강령
(2) 공산당 지도자의 발언
(3) 경제 부흥과 `국가자본주의`
(4) 토지 개혁의 모순과 농촌의 통합

2. 한국전쟁과 미국과의 대립
(1) 한국전쟁
(2) 중국의 참전
(3) 미국과의 첨예한 대립
(4) ‘항미원조(抗美援朝)’ 민족주의하의 움직임
(5) ‘삼반오반’ 운동

3. 사회주의 체제로의 이행
(1) 사회주의적 개조
(2) 급격한 농업의 집단화
(3)사회주의적 통합
(4) ‘사회주의’의 의미 내용의 변화

4. 소련의 ‘핵우산’과 ‘소련 모델’의 경제 건설
(1) 소련의 ‘핵우산’과 군의 근대화 ? 공업화
(2) 사회주의 체제의 경제 건설에서 나타나는 특징
(3) ‘소련 모델’의 건설

본문내용

1. `신민주주의`

(1)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공동 강령
1949년 10월 1일, 마오저똥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을 선언함으로써 중국은 마르크스주의를 기치로 내건 공산당이 지도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를 곧바로 사회주의 체제의 시작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는데, 공산당이 2단계 혁명을 내세워 당분간 신민주주의적 변혁을 과제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건국 직전 발표된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공동강령1)`에 잘 나타나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신민주주의적 변혁`은 강령 제3조(농업국→공업국), 26조(경제 조정, 분업?협업을 통항 사회 경제 전체 발전 촉진), 28조(사회주의적 경제 발전), 29조(반사회주의적 경제 발전)에서 알 수 있듯이 여러 가지 형태의 경제가 병존한 상태에서 공업화를 이루고자 하였다. 정치에 있어서는 "…민주적인 여러 계급과 국내의 각 민족을 결집한 인민 민주 독재를 실행…"이라고 하여 공산당의 지도를 명기하고 있지는 않다. 실제 공산당의 독재일 수밖에 없었으나, 어느 정도 민주적으로 처리하려는 분위기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 후에도 중공업에 편중한 투자가 계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생산량의 비율은 변화되지 않았다. 이것은 중공업의 생산성저하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어쨌든 극단적으로 중공업에 편중된 정책은 민중의 생활보다도 국력향상을 우선순위에 두었던 경제건설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요컨대 국민에 대한 수탈과 착취에 기반한 것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저축과 소비의 비율을 보자면, 당시 저축률은 20%를 넘고 있고, 1/3에 달할 때도 있다. 이때 ‘사치는 적’이라는 이유로 ‘부르주아적 태도’는 비판 받았다. 그러나 그 결과 노동의욕이 저하되었다. 따라서 노동 생산성은 저하되지만 저축률은 증가하는 반비례관계를 보여준다. 결국 저축을 중시한 의도와는 정 반대의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상과 같은 중국의 경제 건설은 국민의 생활향상을 억제한 채 국력의 발전을 도모하였다. 이로써 중공업 부문에 극단적으로 편중되었다.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특징은 중공업이 내륙 지방에 집중적으로 투자되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경제 성장을 위한 투자 효율을 고려한다면 연해 지역에 먼저 투자했어야 옳다. 따라서 효율이 낮은 내륙에 투자한 의도는 국가 방위를 위해서였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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