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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티움 제국사 324-1453

저작시기 2010.01 |등록일 2013.04.30 한글파일한글 (hwp) | 11페이지 | 가격 2,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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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초기 비잔티움의 국가발전의 주된 원천은 로마의 국가제도와 그리스 문화 그리고 기독교 신앙이다. 이 세 요소들 가운데 어느 하나를 제외한다면 비잔티움의 본질은 생각할 수 없다. 비잔티움의 역사는 그 최초의 단계에서는 로마 역사의 한 새로운 시대에 불과하며, 비잔티움 국가는 옛 로마 제국의 연속에 불과하다. 그 이름은 후대에 얻어진 것으로 초기 비잔티움인들은 그 말을 알지 못하였다. 그들은 언제나 스스로 로마인이기를 자처했다. 또한 로마의 국가사상을 통해서 통합되었고, 비잔티움의 군자가 로마 황제이자 기독교 세계의 수장으로서 정점에 서 있는 복합적인 국가간 위계가 발전되었던 것이다. 비잔티움제국은 끊임없는 개조와 신축을 경험했다. 비잔티움의 역사는 처음 300년은 로마 역사의 마지막 300년을 포괄하는 것이다. 비잔티움의 발전과정은 3세기의 위기에서 보듯이 로마 제국을 출발점으로 한다. 위기시대의 경제적인 몰락은 특히 로마 제국의 서부에서 파괴적인 작용을 미쳤으나, 동부는 이에 대해서 비교적 큰 저항력을 보여주었다. 또한 사유지 확장에 따른 라티푼디움이 계속해서 팽창하여 제국 전 영토에서 소규모 자영지와 국유지를 희생시키며 사유지들이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었다. 로마의 원수정은 위기시대의 혼란 속에서 몰락하고,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절대군정으로 교체되었다. 비잔티움의 정체성은 여기서 발전했다. 황제직은 최고위 관직이 아니라 전제권력이 되었고, 이것은 신의 의지가 되어버렸다. 이때 원로원과 데모스는 황제의 권력을 대폭 제한하는 정치세력들이었다. 그러나 황제가 전능한 권한을 지님으로써 로마의 과거에 토대를 둔 이런 요인들이 차지하는 의미는 점차 사라졌다. 초기 비잔티움 시대만 해도 황제는 거의 제한 없이 교회를 지배했다. 다시말해 정통 국가와 정통 교회가 광범위한 결속을 유지하면서 단일 국가-교회 조직체로 성장해갔던 것이다. 황제는 군대의 최고 통수권자이자, 최고의 재판관이며, 유일한 입법자일 뿐만 아니라 교회와 올바른 신앙의 보호자이기도 했다. 신과 직접적으로 관계를 하고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잔티움 문명은 발생적으로 뿐 아니라 본질적 특성에서도 헬레니즘과 깊이 결부되어 있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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