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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트라이어드(정리)

저작시기 2011.01 |등록일 2013.04.30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없음

본문내용

이 장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시선과 응시’에 관한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시선과 응시는 결코 일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서 생각해보자면 시선과 응시는 일치해서는 안 됩니다. ‘시선과 응시의 불일치’라고 함은 ‘은폐’가 존재함을 뜻합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볼 때, 그것이 있는 그대로 보여지지 않고 일정한 은폐 속에서 작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은폐 속에서 ‘환상’이 도출되니까요. 그러니까 ‘무엇인가 가린다’는 것은 그 ‘무엇’을 더욱 환상적이고 매혹적인 무엇인가로 만든다는 것이지요.

그럼 이러한 시선과 응시, 즉 은폐가 포르노그라피, 노스텔지어, 몽타주와 어떻게 관련되는지 알아봅시다.

우선 포르노그라피에서는 은폐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 보여주지요. 즉, 포르노를 보는 우리의 시선과 포르노 안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의 우리를 향한 응시가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응시라고 하는 것이 배우들의 시선이 직접 관객을 바라본다는 의미만은 아닙니다. 쉽게 생각해 봅시다. 영화는 주인공, 혹은 영화 속의 3인칭적인 화자의 시선으로 전개가 됩니다. 그리고 그걸 보는 관객은 어떻습니까? 영화를 전개하는 시선과 하나가 되지요? 그래야 몰입이 되고, 재미를 느끼니까요. 즉, 일반적인 영화는 관객에게 보여지고, 그들의 시선을 잡아서 스크린 속으로 끌어들이는 게 목적입니다.

<중 략>

행위의 성공(오스카가 찔린 것)은 그러므로 실패한, 방해된, 분열된 두 행위가 만난 결과다. (239)

결국 그 두 욕망 중 어느 것이 ‘진정으로’ 결정적인 제스처를 끌어냈던가는 전혀 중요하지가 않다. ‘살인’은 그녀의 욕망과 중첩, 일치에서 나온 것이다. (239)

프로이트에 따르면 결정적인 역할은 두 번째 것인 ‘마조히즘적’ 국면에 속해 있다. (나는 아버지에게 맞고 있다.) (240)

아이가 공상 속에서 만들어내는 것 안에서는 그 두 번째 국면이 어떠한 흔적도 발견할 수가 없다. “아버지가 나를 때리고 있다”와 “한 아이가 맞고 있다” 사이에는 놓친 무엇인가가 있다는 사실을 지적해주는 ‘단서들’에 기초해서 거슬러올라가 그것을 구축할 수 있을 뿐이다.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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