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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공내전과 중국인민공화국 성립

저작시기 2013.01 |등록일 2013.04.29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1,500원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國共內戰의 배경

2. 國共內戰의 전개

3. 國民黨의 敗北의 原因
1) 戰略의 허술
2) 中央軍과 地方軍 사이의 괴리
3) 軍隊內의 派閥의 存在
4) 抗日戰 이후의 군사력의 약화
5) 장개석의 一人獨裁體制
6) 심각한 인플레이션의 발생

4.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
1)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

Ⅲ.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국공내전은 중국에서 항일전쟁이 끝난 후 중국 재건을 둘러싸고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에 벌어진 국내전쟁이다. 국내전의 움직임은 일본의 패배가 결정적인 단계로 접어들면서 현저하게 나타났다. 일본침략군이 항복한 1945년 8월 평화를 갈구하는 중국 국민의 여망을 배경으로 국민당의 장개석과 공산당의 모택동이 충칭에서 화평교섭회담을 개최하였다. 그러나 국민당은 미국의 원조하에 끝내 중공(중국공산당)과의 제3차 국공합작을 거부하고 장개석은 4대 1이라는 압도적 군사력을 배경으로 협정을 파기하였다. 한편 모택동도 강경히 이에 맞서 응전태세로 나왔기 때문에 마침내 1946년 전면적인 내전으로 돌입하게 되었다. 내전의 결과 초기의 열세였던 공산당이 승리해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웠다. 이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자.
Ⅱ. 본론

1. 國共內戰의 배경

중국내의 양대 세력이었던 국민당과 공산당은 1930년대 말, 일본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기 위하여 제2차 국공합작을 하게된다. 그 결과로 1945년에 일본이 패망하면서 승리의 기쁨을 맛보게 되나, 항일전의 종료는 내전이라는 새로운 전쟁을 예고하고 있었다. 1920년대 말, 국민당과 공산당이 군벌세력의 타도를 위해 결성했던 제1차 국공합작이 깨진 이후로 양 세력은 전투와 대립을 끊임없이 되풀이해왔고, 애초에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내전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민주주의 세력을 대표하는 미국은 자신들의 증가된 공업력의 발산을 위한 새로운 시장개척의 필요성에서 일본이 가졌던 중국내의 이권을 자신들이 가지기를 원했고, 또한 아시아에서 공산주의 세력의 확장을 바라지 않았으므로 국민당을 지지, 내전이 일어나는데 한 몫을 담당했다. 그리고 공산주의 세력을 대표하는 소련 역시, 코민테른을 통해 중국 공산당에게 많은 지령을 내리고, 경제적으로 후원하는 등 많은 활동을 하고 있었다. 또한 서서히 고조되어가는 세계의 냉전의 분위기는 국민당이 정전협정 이후에 공산당을 공격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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