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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시기 2013.04 |등록일 2013.04.27 한글파일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2,000원

목차

Ⅰ. 서론

Ⅱ. 제1공화국(이승만정부)의 연혁

Ⅲ. 제1공화국(이승만정부)의 출범

Ⅳ. 제1공화국(이승만정부)의 이데올로기

Ⅴ. 제1공화국(이승만정부)의 헌법

Ⅵ. 제1공화국(이승만정부)의 언론정책
1. 언론정책
2. 언론동향

Ⅶ. 제1공화국(이승만정부)의 대군부정책

Ⅷ. 제1공화국(이승만정부)의 붕괴

Ⅸ.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한국 역사상 단군이래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이식시키기 위해 자기희생을 각오한 장면은 틀림없이 소신과 신념이 있는 <정치가>이었다. 이해관계에 따라 간에 붙었다가 쓸개에 붙었다 하는 정치인은 결코 정치가라 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장면은 후진국의 정치지도자로서는 부적합한 인물이었다. 일제시대에 그는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다마오까 쯔도무(王岡勉)라고 창씨개명 했다. 그는 그의 뇌리에 한국인으로서의 정신만 정확히 하고 있다면 창씨개명을 했다 해서 일본인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지론을 각인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학교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그의 창씨개명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가톨릭 재단인 동성상업학교 교장으로서 창씨개명에 항거함으로써 학교경영의 화 또는 폐교당할 지 모르는 상황에서의 결단이었다. 그가 가톨릭 평양교구에서 5년간 봉사할 때 숭실전문학교가 신사참배 거부로 폐교당한 것을 목도했기 때문이었다.

<중 략>

이승만은 미국으로부터 임정의 정부자격을 승인받음으로써 동시에 그의 정치적 지위를 확고하게 만들려고 하였다. 한마디로 이승만은 주미외교위원부 외교위원장 자격으로 활동하였지만 이는 명목에 불과했고, 자신의 정치적 기반과 독자적 목표를 위해 움직였다는 것이 보다 올바를 것이다. 그는 해방 직전 자신의 조직기반인 同志會를 大韓民主黨으로 개편하였는데, 이전의 태도와는 달리 중경의 임정과 거리를 두며 정당을 결성해 세력결집을 모색하고 귀국채비를 서두른 사실은 이 당시 이승만의 활동목표가 어디에 있었는가를 짐작케 한다.
임정이나 이승만의 외교방식에 나타나듯, 강대국 간 이해관계의 상충을 비집고 들어가 이를 이용해 목표를 달성하려 했다는 점은 이 시기 각 세력의 활동이 독립이라는 목표를 향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전후 국내정치에 대한 구상과 연결을 가지며 전개된 측면 또한 없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러한 경향은 종전이 가까워지면서 강화되어 갔다.

참고 자료

강혜경(2005), 제1공화국 초기 국민통제의 확립, 한국학술정보
김수자(2010), 대한민국 제1공화국의 지배와 저항담론의 불협화음, 한국민족운동사학회
백영철(1995), 제1공화국과 한국민주주의, 나남
서중석(2007), 이승만과 제1공화국, 역사비평사
성병욱(2005), 한국 제1공화국 정당체계의 특성, 21세기정치학회
후지이다케시(2008), 제1공화국의 지배 이데올로기, 한국역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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