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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시기 2013.04 |등록일 2013.04.27 한글파일한글 (hwp) | 12페이지 | 가격 2,000원

목차

Ⅰ. 서론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통일전선운동(좌우합작운동)

Ⅲ.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당통일운동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독립운동

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임정개조운동

Ⅵ.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우익진영통합운동

Ⅶ.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민족유일당운동

Ⅷ.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인성학교유지운동

Ⅸ.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해방이 박두했던 1944~45년 임정 내부에서는 임정의 확대?강화 및 해외 항일운동세력과의 연대를 통한 민족통일전선 결성이 가장 중요한 과제로 제기되었다. 이러한 내부논의가 전개되면서 임정은 해외 항일운동세력과 연대를 위한 구체적인 시도에 착수했다. 당시 임정이 연대를 모색할 수 있는 여타 해외 항일운동세력은 미주, 화북, 만주 및 국내에 존재하고 있었다. 이중 임정이 연락?연대를 하는데 가장 주목했던 것은 화북의 조선독립동맹?조선의용군세력과 만주의 항일빨치산 세력이었다. 미주의 항일운동세력은 물리적 거리와 영향력 때문에, 국내 항일세력은 정보부족과 일제의 차단 때문에 연락?연대의 가능성이 보다 제한적이었다.
종래의 연구에 따르면 중경 임정과 연안 독립동맹의 관계는 주목을 끌만한 것이 없었다. 단지 1945년 5월 임정 국무위원이던 장건상이 연안에 파견되었지만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한 채 해방을 맞았다고만 할뿐이다.

<중 략>

상해를 점령한 일본제국주의는 친일세력인 조선인친목회를 앞세워 인성학교에 대한 압력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친목회는 우선 인성학교를 온건한 교육기관으로 바꾸는 계획을 세워 상해주재 일본총영사관과 인성학교 당국자에게 전달하였다. 이에 1935년 10월 일본 총영사관은 당시 인성학교 선우혁교장에게 1935년 11월 10일부터 일제총독부 발간 국정교과서를 교재로 채택하여 일본어를 국어로서 교육할 것을 일방적으로 명하였다.
이에 학교당국자는 11월 4일 학부형회와 유지회를 소집하여 대책을 협의하였으나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학교 당국에 일임하였다. 그리하여 11월 11일 교장을 비롯한 인성학교 전직원은 총사직을 결의, 무기휴교상태에 들어갔다. 이로써 부속유치원만 그대로 운영하고 1917년 설립되어 18년 동안 상해에서 한국교포들의 초등교육을 담당하였던 인성학교는 문을 닫고 말았다. 그 뒤 인성학교를 부활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실현되지 못하였다가 1945년 해방 직후 상해교민들에 의하여 개교, 한인 아동들에게 국어?국사?영어를 교육시켰다.

참고 자료

김광재(2011), 일제시기 상해 인성학교의 설립과 운영, 동국대학교사학회
김지암(2007),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독립운동 각 당파의 관계,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이현희(2000), 임시정부의 숨겨진 뒷 이야기, 학연문화사
장영수(2010), 임시정부헌법의 역사적 의미와 대한민국 헌법의 제정, 고려대학교 법학연구원
최선웅(2008), 1924년~1927년 상해 청년동맹회의 통일전선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한국근현대사학회
한시준(2003), 민족유일당운동과 홍진, 문화체육관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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