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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시기 2013.04 |등록일 2013.04.27 한글파일한글 (hwp) | 15페이지 | 가격 2,500원

목차

Ⅰ. 서론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내정방침

Ⅲ.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임시연통제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광복군창설

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인성학교유지운동

Ⅵ.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코민테른자금(제삼인터내셔널자금)

Ⅶ.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한일관계사료집

Ⅷ.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비행사양성

Ⅸ.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임시정부가 아무리 큰 업적을 쌓았다고 해도 반성이 따르기 마련이다. 해방 후 미소 열강에 의한 국제제패로 말미암아 임시정부의 뜻을 펴지 못하였고 또 독립운동의 뜻과 같이 독립하지 못하였으므로 반성할 사항이 많을 수 있다. 더구나 남북이 분단되어 미?소의 조종대로 분단정부가 수립되어 아직까지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처지에서 여러 가지 반성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몇 가지만 간추려 보기로 한다.
먼저 임시정부의 이념이 분명하지 않았다. 임시정부는 자유 민주주의를 표방한 것으로 자타가 공인하고 있었다. 그런데 임시정부의 건국강령은 사회주의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건국강령에서 토지를 국유화한다는 규정은 임시정부에서 좌파에 속했던 민족혁명당의 신영삼도 반대하던 조항이었다. 그 조항에 대하여 논란이 일 때, 조소앙은 자본주의는 생명이 다한 것으로 설명했다. 그렇다면 어느 길을 가는 것이냐의 문제가 제기된다. 어느 길이 좋고 나쁨을 가리자는 말이 아니라 어느 길인가를 분명히 할 필요는 있었다. 필자는 미국이 임시정부의 승인을 반대한 이유 중의 하나가 거기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가 많다.

<중 략>

임시정부는 1919년 11월 5일에 ‘대한민국임시관제’법률 2호를 공포하여 군무부 육군국과 해군국이 각기 ‘비행대’를 장리한다고 천명하였다. 일제와의 독립전쟁에서 필요하게 될 비행사를 양성하려는 것이었다. 위와 같은 비행사 양성 계획에 의거하여 1920년대에는 비행대 편성문제가 활발하게 대두되었다.
상해에서는 안창호를 중심으로 비행기를 이용한 국내 선전 및 연락활동을 위하여 비행기 구입운동이 전개되었으며, 미주에서는 군무총장 노백린을 중심으로 원동군사운동 후원, 즉 독립전쟁을 목적으로 비행사양성소(비행기학교) 설립운동이 구체화되었다. 한편 망명 한인 다수가 중국정부 또는 군벌정권과 소련의 항공학교에서 비행술을 배웠다. 그리하여 1940년대에 와서 임시정부는 태평양전쟁에서 독립전쟁의 최후 승리를 위한 전략적인 방안을 수립하였는데 곧 한국 광복군 비행대의 편성과 공군창설계획이 그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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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내희, 임시정부가 꿈꾼 교육·문화 정책과 그 굴절, 한국사회사학회, 2010
윤대원, 임시정부법통론의 역사적 연원과 의미, 역사교육연구회, 2009
오향미,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입헌주의, 한국국제정치학회, 2009
이목희, 대한민국 임시정부외교의 분석, 서울대학교, 1984
장영수, 임시정부헌법의 역사적 의미와 대한민국 헌법의 제정, 고려대학교 법학연구원,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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