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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임시정부 상해시기의 의열투쟁, 대한민국임시정부 상해시기의 국무위원회제, 대한민국임시정부 상해시기의 군사정책, 비행대편성, 대한민국임시정부 상해시기의 독립전쟁,이승만 대통령

저작시기 2013.04 |등록일 2013.04.27 한글파일한글 (hwp) | 20페이지 | 가격 3,000원

목차

Ⅰ. 서론

Ⅱ. 대한민국임시정부 상해시기의 의의

Ⅲ. 대한민국임시정부 상해시기의 의열투쟁

Ⅳ. 대한민국임시정부 상해시기의 국무위원회제

Ⅴ. 대한민국임시정부 상해시기의 연통제

Ⅵ. 대한민국임시정부 상해시기의 군사정책

Ⅶ. 대한민국임시정부 상해시기의 비행대편성

Ⅷ. 대한민국임시정부 상해시기의 독립전쟁

Ⅸ. 대한민국임시정부 상해시기의 이승만 대통령

Ⅹ.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1919년 3?1운동 직후 상해에서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조직되었다. 상해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1일「대한민국임시헌장」과「선서문」을 발표하였다. 이 두 문서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독립운동 방향과 원칙을 공식적으로 천명한 최초의 문서였다.「임시헌장」제7조에는 ‘국제연맹 가입’을 명기하였다.「선서문」에서는 임시정부의 대사명이 ‘국제도덕을 준수하면서 국토를 광복하는 것’임을 선언하면서, 한민족의 인도와 정의가 일본의 야만과 폭력을 교화하고 이길 것이라고 하면서 ‘절대 독립’이 최고의 목표임을 천명하였다. 이것은 임정의 독립운동 방략이 3?1독립운동의 사상적 기반인 인도주의와 국제도덕에 의거한 것이며, 국제연맹 가입과 일본의 ‘교화’를 통해 독립을 달성할 수 있다는 의식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원칙이 독립운동 방략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가는 임시정부에서 국민에게 지시한 행동 지침, 그리고 임시의정원에서 행한 국무위원의 시정방침 연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임시정부 당국에서 국민 특히 국내 동포에게 지시한 행동지침을 살펴보자.

<중 략>

그러나 임정의 항일민족통일전선 결성시도는 해내외 항일단체와의 연락?연대를 위한 비조직적인 ‘시도’의 차원에서 종결되었다. 또한 임정 자신이 항일단체와의 조직적 결합을 위한 구체적인 자기 원칙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협상 자체도 공식적 차원에서 이뤄지지 못했다. 물론 항일민족통일전선 결성의 대원칙은 항일이었지만, 연대를 위한 구체적인 협의과정과 원칙이 필요했다. 그러나 중경 내부에서조차 통일?단결을 이뤄내지 못한 상황에서 해내외를 아우르는 단일한 항일민족통일전선 결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이는 항일민족통일전선을 조직?영도할 수 없었던 임정 자체의 역량 부족 때문이었으며, 나아가 민족해방운동 전체의 한계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중경, 화북, 소련, 국내의 항일단체들은 각자의 존재를 인식했고 단일한 항일민족통일전선 결성이 시급하고 필요함을 자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각과 일련의 비조직적 시도로는 단일한 항일민족통일전선 결성을 이뤄낼 수 없었다.

참고 자료

김지암 : 근대 민주국가의 출발점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2006
김지암 :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외교적 노력과 공헌,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2007
신상준 :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성립변천과 통치조직, 대구대학교평화통일연구소, 1987
이만열 : 임시정부의 통합운동, 문화체육관광부, 1998
조항래 :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의 정치이념과 정통성 계승에 관한 연구, 삼균학회, 1997
조동걸 :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조직과 변천, 건국대학교,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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