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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지역(광주광역시)의 5 18광주민주화운동(5 18광주민중항쟁), 광주지역(광주광역시)의 학생독립운동, 광주지역(광주광역시)의 노동운동, 광주지역(광주광역시)의 민족운동 분석

저작시기 2013.04 |등록일 2013.04.27 한글파일한글 (hwp) | 12페이지 | 가격 2,000원

목차

Ⅰ. 광주지역(광주광역시)의 5 18광주민주화운동(5 18광주민주항쟁, 5 18광주민중항쟁)

Ⅱ. 광주지역(광주광역시)의 학생독립운동
1. 1929년의 시위
2. 1930년의 시위

Ⅲ. 광주지역(광주광역시)의 노동운동

Ⅳ. 광주지역(광주광역시)의 민족운동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광주지역(광주광역시)의 5 18광주민주화운동(5 18광주민주항쟁, 5 18광주민중항쟁)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진행되었던 신군부의 폭력에 대한 광주민중들의 처절한 저항이 있었다. 전두환이 이끌고 있던 신군부는 광주민중항쟁이 ‘불순분자의 선동에 의해 사주되었다’ ‘어떤 정치세력의 배후 조종에 의해 일어난 것이다’라고 선전하였다. 20년 전 1960년 이승만 정권이 2?28대구민주운동을 공산주의에 의해 조종되었다거나 민주당의 사주에 의해 일어난 것이라고 한 것과 같은 수법이었다.

광주민중항쟁의 원인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시위진압을 위해 ‘화려한 휴가’를 받아 광주에 투입되었던 공수부대의 과잉진압을 꼽는다. 공수부대의 무자비한 폭력 때문에 광주민중항쟁이 촉발되었다고 한다.

<중 략>

그리고 최근에 출간된 고 이기홍옹의 학생독립운동의 증언을 담은 유고집에도 비슷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어 인용해 본다.

“1926년 11월 3일 조직된 성진회는 제3차 조선공산당, ML당 Y부(학생지도부)의 강해석(姜海錫)씨로부터 지도를 받고 있었어요. 성진회의 각 학교 대표로 광주고보는 장재성(張載性), 광주농업학교는 문승수(文升洙)가, 사범학교는 임종근(林鍾根)이 각각 맡아서 활동 했어요”

이상과 같은 고 이기홍옹의 증언은 강해석이 광주학생독립운동의 기반이 된 ‘성진회’를 중추적으로 지도해 나간 청년운동가였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고 하겠다.
한편 ‘성진회’는 1929년 6월 중순경 이제까지의 활동이 분파적?개별적이었던 까닭에 전열이 분산되었으므로 다시금 강력한 연합전선을 구축하기 위하여 ‘독서회’로 변신하였다. ‘독서회’는 광주지역의 항일 맹휴를 주도하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1928년 6월 26일부터 본격화 되는 항일 맹휴의 도화선이 된 ‘이경채 사건’이다. 1928년 광주고보 5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경채는 친구인 박병하?윤해병 등과 1927년 여름부터 ‘사회과학 연구’에 몰두해 오다가, 1928년 3월 28일~4월 18일에 이르기까지 항일 성토문을 작성하여 광주시내와 송정리 곳곳에 첨부하고, 또한 각 중학교, 경찰서 등에 우송했다.

참고 자료

김성민, 광주학생운동의 전국적 양상과 이념, 문화체육관광부, 2009
김성민, 광주학생운동연구, 국민대학교, 2007
송미성, 광주지역 '노동운동 참여자'의 정체성 변화, 전남대학교, 2010
신주백, 일제하 민족운동과 광주항일학생운동,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1996
이상식,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적 배경, 향토문화개발협의회, 2002
조재구,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언론의 보도태도에 관한 연구, 중앙대학교,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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