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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화와 일본전통문화, 일본대중문화, 일본문화와 일본주거문화, 일본게임문화, 일본문화와 일본무사도문화, 일본문화와 일본목욕문화, 일본문화와 일본성문화, 일본문화와 일본고대문화

저작시기 2013.04 |등록일 2013.04.26 한글파일한글 (hwp) | 13페이지 | 가격 2,000원

목차

Ⅰ. 서론

Ⅱ. 일본문화와 일본전통문화
1. 가부키(歌舞伎)
2. 노오(能)
3. 분라쿠(文樂)
4. 다도(ちゃどう)

Ⅲ. 일본문화와 일본대중문화

Ⅳ. 일본문화와 일본주거문화

Ⅴ. 일본문화와 일본게임문화

Ⅵ. 일본문화와 일본무사도문화

Ⅶ. 일본문화와 일본목욕문화

Ⅷ. 일본문화와 일본성문화
1. 노조키(のぞき部屋)
2. 스트립극장(ストリシプ劇場)
3. SM카페
4. 데이트 카페(デ-ト)
5. 호테토루(ホテトル)
6. 소프란도(ソ-プランド)
7. 호스트 바

Ⅸ. 일본문화와 일본고대문화

Ⅹ.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메이지 이후 일본정부는 박물관과 도서관을 지었고, 주요 문화재를 보호했다. 박물관과 도서관들은 일찍이 메이지 시대에는 문부성이 관장하였다. 공립예술학교들이 전통예술의 단점을 보완하고 현대스타일을 연구하기 위해 1876년에 문을 열었다. 국가는 이어 외국인 교수들을 초빙하여 회화, 조각, 음악, 오페라 그리고 발레부문의 새로운 스타일을 가르치게 했다. 동경음악원은 1879년 공식적으로 창설되었고, 또한 동경예술원은 그로부터 8년 후에 세워졌다. 그것들은 오늘날 일본 최고의 예술교육기관인 동경미술대학교를 창설하면서 합병되었다. 1879년 국회가 고대성지와 사찰보호법률을 통과시키면서 문부성은 역사물 보전을 관장하게 되었다. 제국예술원은 1919년에 뛰어난 업적물을 인식시키기 위해 만들어졌고, 1937년부터는 국가문화훈장을 수여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예술원이 문학과 공연예술을 폭넓게 다루었다. 1945년 이전까지는 대체로 예술인 스스로가 결성한 민간협회와 단체들이 기업의 후원아래 성장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한국문화예술진흥원, 1988). 따라서 오늘날과 같이 문화정책을 담당하는 정부 조직은 없었다.
전후의 문화정책은 4기로 구분할 수 있다. 제1기는 문화정책의 부재기다. 전시중의 문화통제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해서 국가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여가 배제되었기 때문에 예술문화정책은 극히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문화국가의 실현이라는 이념 하에서 1946년부터 예술제가 개최되고 무대예술에 대한 국가의 관여가 높아졌다. 문화재 보호는 법륭사금당의 벽화소실을 계기로 1950년 「문화재보호법」이 새롭게 제정되었다. 동법에 의해 문화재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형성되었다.
제2기는 문화정책의 원년기이다. 이 시기에는 민간예술활동 특히 무대예술활동에 대한 지원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고도경제성장기와 더불어 민간예술활동은 각 분야에서 활발하였으나 많은 예술단체는 자금부족으로 경영이 악화되었다. 따라서 국가는 민간예술단체에 대해 적극적으로 자금지원을 하였다. 1968년에는 문화청이 설치되어 예술문화정책과 문화재보호정책이 문화청의 소관사무로 일원화되었다(문화청, 1978).

참고 자료

고전광웅 - 일본의 주거 문화와 주택정책, 건축도시공간연구소, 2011
고병희 - 일본 게임속에 나타난 한국 역사의 왜곡 사례에 관한 연구, 한국콘텐츠학회, 2006
박희영 - 작품 속에 설정된 무사도문화와 그 의미, 한국일본근대학회, 2012
박동성 - 일본의 공중목욕탕 : 한 지방도시의 사회사와 센토의 변천, 지역사회학회, 2003
증근원 리 외 1명 - 일본전통문화유산의 디지털화 현황과 전망, 한국국학진흥원, 2008
최묘임 - 일본어 교육과 일본대중문화와의 관계성 연구, 동아대학교,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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