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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1장의 믿음에 대한 연구

저작시기 2011.03 |등록일 2013.04.25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흔히 믿음이라고 하면 바울의 이신칭의 교리에서 나타나는 믿음만을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성경을 보다 보면 믿음을 꼭 이신칭의로서만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믿음을 이신칭의 교리에 한해서 설명하려고 하는 것일까? 엄밀한 의미에서 바울의 믿음관을 이신칭의 교리에 근거한 관점이라고 말할 수만은 없다. 이신칭의가 특히 강조된 것, 즉 이신칭의가 믿음의 모든 것으로 생각되게 된 데에는 종교개혁자 루터의 역할이 크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로마 가톨릭의 잘못된 구원관에 대해 “오직 믿음으로”라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외친 것은 정당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로마 가톨릭에 대한 지나친 반발로서 믿음의 개념이 오로지 이신칭의로서만 이해된다는 것은 옳지 않다. 이신칭의는 구원사역과 관련된 믿음의 본질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 믿음의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믿음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신칭의라는 전제를 가지고 믿음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자체의 말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본고에서는 특히 믿음장이라 불리는 히브리서 11장에 나타나는 믿음이 어떠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논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고에서는 히 11:1-3을 중심으로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고 있는 믿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것과 같이 본고에서 논해지는 믿음의 본질은 성경이 말하는 믿음의 정의를 하나로 묶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다시 말해 히브리서 11장이 말하는 믿음은 말 그대로 히브리서 기자가 히브리서 11장을 통하여 독자들에게 말하고 있는 믿음이다. 즉 독자들이 처한 상황에 근거하여 기자가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믿음을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Ⅲ.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흔히 믿음이라고 하면 바울의 이신칭의 교리에서 나타나는 믿음만을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성경을 보다 보면 믿음을 꼭 이신칭의로서만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믿음을 이신칭의 교리에 한해서 설명하려고 하는 것일까? 엄밀한 의미에서 바울의 믿음관을 이신칭의 교리에 근거한 관점이라고 말할 수만은 없다. 이신칭의가 특히 강조된 것, 즉 이신칭의가 믿음의 모든 것으로 생각되게 된 데에는 종교개혁자 루터의 역할이 크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로마 가톨릭의 잘못된 구원관에 대해 “오직 믿음으로”라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외친 것은 정당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로마 가톨릭에 대한 지나친 반발로서 믿음의 개념이 오로지 이신칭의로서만 이해된다는 것은 옳지 않다. 이신칭의는 구원사역과 관련된 믿음의 본질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 믿음의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믿음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신칭의라는 전제를 가지고 믿음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자체의 말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본고에서는 특히 믿음장이라 불리는 히브리서 11장에 나타나는 믿음이 어떠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논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고에서는 히 11:1-3을 중심으로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고 있는 믿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것과 같이 본고에서 논해지는 믿음의 본질은 성경이 말하는 믿음의 정의를 하나로 묶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다시 말해 히브리서 11장이 말하는 믿음은 말 그대로 히브리서 기자가 히브리서 11장을 통하여 독자들에게 말하고 있는 믿음이다. 즉 독자들이 처한 상황에 근거하여 기자가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믿음을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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