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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저작시기 2013.04 |등록일 2013.04.24 한글파일한글 (hwp) | 13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1. 姜維東 - 고구려 연구의 몇 가지 문제
2. 南北朝 時期 고구려 왕국의 대내외 정책에 대하여 논함
3. 孫玉良 -唐朝의 對 고구려 원정의 동기와 효과
4. 孫玉良·孫文範 - 新中國의 高句麗 考古學의 몇 가지 수확에 대한 개괄
5. 고구려의 주요 유적과 그 분포
6. 徐日範 - 압록강 이남의 고구려 山城 분포와 그 방어 체계

본문내용

최근 고구려 역사에 대해 조선 반도학자들이 보이는 기형적인 관심과 연구로 인해 국내 학술계 고구려 연구가 이슈화 되고 있다. 이 이슈화 되는 쟁점을 알려면 일본 초기 동양 사학자들의 잘못된 `동양사 연구`에 초점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일본 초기 동양 사학자들은 자신들의 침략 전쟁에 부합하기 위해 `동양사 연구`를 농단하였으며 고구려학은 그 일부분이 되었다. 하지만 일본이 전쟁에 패하자 학문 연구비용이 없어진 이들의 동양사 연구는 사그러들었다. 그런데, 20세기에 와서 일본 초기 동양 사학자들의 잘못된 인식을 계승한 조선 반도학자들의 고구려학으로 인해 다시 한 번 쟁점이 되었고

<중 략>

고구려사의 연구영역 속에서 중국학자들이 가장 큰 성과를 거둔 것은 호태왕비에 대한 연구일 것이다. 신중국이 성립된 후 30여 년 간 국내외의 여러 요소의 혼란으로 인하여 중국학자들은 고구려사에 관심이 아주 적었으며 심지어 어떠한 역사사실을 존중하지 않고 당연한 도리의 현상을 위배하여 그것을 유포하는 것을 놓아두거나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지난 세기 50년대 국제적으로 호태왕비에 관계되는 문제에 쟁론이 나타났으며 진위등에 대해 열렬한 토론을 전개되었다. 이 문제에 대해 당연히 인류문화를 번영을 위해 소식들은 중국 학자들로 하여금 귀중한 선의의 행동을 하게 하였으며 게다가 호태왕비가

<중 략>

고구려 해안 방어 체계는 대체로 대동강 입구와 황해 남도 해안 일대에 만들어진 방어성이 하나의 치밀한 체계를 형성한다. 이와는 반대로 이북 지역은 다소 드문드문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압록강 이남에서 고구려 해안 방어의 중심이 대동강 하류 및 이남 지역에 있으며 백제의 침략을 방어하는 그 주된 목적임을 설명하여 주는 것이다.
이 세개의 방어 체계가 유기적으로 결함됨으로써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한반도 서북지역에 하나의 견고한 요새가 구축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고구려를 지키는 가장 핵심적인 방어 체계가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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