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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에 대한 사학자들의 인식

저작시기 2012.05 |등록일 2013.04.22 한글파일한글 (hwp) | 13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고조선에 대한 사학자들의 인식 입니다

참고문헌 및 각주 완벽 합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단군에 대한 인식
2. 위치 비정의 문제
3. 관등관직에 대한 이해

Ⅲ. 결론

본문내용

서 론
고조선에 대한 사학자들의 인식을 통하여 단군 및 고조선 위치 비정의 문제와, 관등 관직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특별히 우리나라 근대 시기에는 일제의 소위 식민주의 사관에 대항하여 한민족 주체의 역사를 체계화함으로써 민족정신을 고양하는데 그 초점을 두었던 민족주의 사학자 http://user.chollian.net/~ikch0102/lmy.htm
이만열(숙명여대 교수,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소장) 「단군상 문제와 기독교계의 대응」
한말 일제하에 들어서서는 근대적인 연구방법으로 여러 학자들에 의해 단군관계의 연구가 진행되
기도 하였다. 그런 연구 가운데는 일제의 단군 및 한국 상고사 말살의도를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이뤄진 것도 있다. 단군 연구에는 신채호, 최남선, 정인보, 김재원의 것이 두드러진다.
들 -특히 신채호와 정인보- 의 연구와 함께, 현대시기의 역사학자 노태돈, 서영수의 연구를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하겠다.
본 론
◈ 근대사학자들의 고조선 인식에 대한 전반적인 견해
민족사학자로서 단군 조선을 근대적으로 해석한 최초의 학자는 단재 신채호라 할 수 있다. 그는 당시의 진보적인 시민적 사회과학 이론과 근대 민족주의 사상에 기초하여 저술한 <독사신론>에서 일본 학자들이 초기 식민주의 사관의 허구와 날조를 단호히 비판하였으며, 당시 대부분의 국사서들이 단군을 개국시조로 인정은 하였으나 단군을 `신인`이라고 신비화한 점 등을 통렬히 비판하였다.
그는 <독사실론>에서 단군을 추장으로, 단군 시대를 `추장정치가 최성한 시대`로서 보았으며, 단군이 소추장들을 무력 또는 성덕으로 복속시키고 추장들의 대추장으로서 개국의 시조왕이 되어 고대문명(고조선)을 열었다고 주장하였다.
최남선 http://100.empas.com/entry.html/?i=72493&Ad=map
사학자이자 문인이었던 육당 최남선은 그의 저서「단군론」,「조선역사」등을 통해 근대시기의 민족사학에 적
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백두산근참기」의 내용을 잠시 살펴보면, 그가 주장하는 고조선의 인식에 대해 살펴 볼 수있다. 백두산 근참기(白頭山覲參記)는 육당이 지은 백두산 기행문으로서 1926년에 발표하였다. 이는 민주주의 사상을 강조한 내용으로서, 육당은 이 기행문을 통하여 백두산의 신화적 권위를 밝히고 한국 정신에 대한 민족애와 더불어 미학적 신앙을 표현하였다.

참고 자료

<참고서적 및 논문>
노태돈,「단군과 고조선사」, 사계절, 2000
서영수,「고조선의 위치와 강역」, <한국사 시민강좌 vol.2>,1988
신일철,「신채호의 역사사상연구」, 고려대학교, 1983.
이만열 (숙명여대교수,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소장),
「단군상 문제와 기독교계의 대응」,「단재 신채호의고대사인식」
「근대 민족주의 사학과 민족문제-신채호의 사학을 중심으로」
최지연,「정인보의 고대사인식」, 숙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9.
황원구,「정인보」<한국사 시민강좌 vol.19> pp.134-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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