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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틴제국의 ‘이콘’과 보드리야르의 ‘시뮬라르크’

저작시기 2012.06 |등록일 2013.04.21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2,000원

목차

Ⅰ. 8-9세기 비잔티움의 이콘논쟁에서 나타난 ‘이미지’ 문제
Ⅱ. 장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에서 나타난 ‘이미지’ 문제
Ⅲ. 이콘 논쟁과 시뮬라시옹의 ‘이미지론’ 비교분석
Ⅳ. 마치며
Ⅴ.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8-9세기 비잔티움의 이콘논쟁에서 나타난 ‘이미지’ 문제
이콘은 7세기에 들어와 그리스도의 성육신와 그리스도의 신인성이 확립됨으로써 이콘 역시 그리스도처럼 보이지 않는 초월자의 가시적 형상으로 간주되어 비잔티움 제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교회의 내부와 외부에서 자신들의 경건한 신앙심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전례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콘에 대한 왜곡과 몰이해, 그리고 이콘의 지나친 남용이 점차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레오 3세의 등장과 함께 이콘파괴론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726년, 소아시아에 남아있던 네스토리우스파와 단성론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은 레오 3세는 콘스탄티노플 황궁의 청동 대문에 있던 예수 그리스도의 이콘을 제거하고 이콘 공경을 공식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했다. 그는 비잔티움 제국의 이와 같은 혼란이 비잔티움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성모, 성인들의 이콘 앞에서 모세의 율법을 어기고 기도를 드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즉 우상 숭배로 인한 신의 분노를 혼란의 원인으로 삼았다.

<중 략>

보드리야르 역시 이미지의 시뮬라르크적인 속성을 이미 비잔티움 세계의 이콘 파괴자들이 간파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이콘 파괴론자들은 이콘의 사실의 재현이나 사실은폐, 왜곡을 본 것이 아니라, 사실 자체의 부재 또는 사실자체와 무관한 시뮬라크르적 미혹을 목격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Ⅳ. 마치며
현대 사회에서 대중매체는 수많은 기호체계와 이미지들을 쏟아내고 있다. 움베르토 에코의 표현처럼 이미지 과잉, 새로운 중세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우리는 병원 진료부터 전쟁에 이르기까지 일상생활에서 수많은 시뮬라시옹을 직접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직면한 오늘날의 이러한 삶속에서 이미지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 것인가에 대하여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참고 자료

이덕형 저, [비잔티움, 빛의 모자이크] : 성균관대 출판부
이덕형 저, [이콘과 아방가르드] : 생각의 나무
존 로덴 저, 임산 역, [초기 그리스도교와 비잔티움 미술] : 한길아트
장 보드리야르 저, 하태환 역, [시뮬라시옹] : 민음사
배영달 저, [보드리야르와 시뮬라시옹] : 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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