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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존 칼빈 테아 반 할세마

저작시기 2010.07 |등록일 2013.04.20 한글파일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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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칼빈의 아버지 제라르 코뱅은 사제들과 대성당 참사회의 법률 자문관이자 누아용 주교의 비서관이었다. 그는 부유한 퇴역 여관 주인의 딸 잔 르 프랑과 결혼하였고 존 칼빈은 1509년 7월 10일에 태어났다. 칼빈은 프랑스 피카르디 지방의 누아용에서 14년 동안 살았다. 누아용은 사제들, 수사들, 참사회원들, 교구 신부들로 북적였고 그 밖에 교회에 고용된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각자의 이익과 출세에 관심이 있었다.
제라르 코뱅은 자신의 모든 아들들을 성직자로 기르고 싶었다. 칼빈은 12세 때 예비 사제가 되어 학비를 확보하게 되었다. 성직록은 수입이 더 좋은 것으로 교환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칼빈은 18세가 되자 성직록을 동생 앙투안에게 물려주고 다른 것으로 바꾸었다. 2년 뒤 그것을 다시 교환하여 조부가 살던 퐁 레베크 가까운 곳에서 명목상의 신부가 되어 봉급을 받았다. 주교의 조카인 앙제가의 자제들은 칼빈의 절친한 친구들이었다. 칼빈은 그들과 함께 누야용에 있는 카페트라는 사립 중등학교에 진학했다. 카페트에서 모든 것을 배운 앙제가의 자제들은 1532년 칼빈을 데리고 파리로 공부하러 떠났다.

<중 략>

스페인 출신의 미카엘 세르베투스는 하나님의 삼위를 부정했다. 그의 이러한 사상이 담긴 책은 스트라스부르에서 출판되자마자 금서로 규정되었다. 이후에도 그는 『복원』이라는 책을 내었다. 『복원』이 출판된 직후 제네바의 한 신교도가 리옹에 사는 로마 가톨릭교도인 사촌에게 편지를 썼다. 그의 편지에는 세르베투스가 그의 사촌 근처에 산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그의 사촌이 이 사실을 교회 당국에 알렸고 그들은 세르베투스는 소환했다. 그들은 이 신교도에게 증거를 더 요구했고 그는 칼빈을 설득해 칼빈이 가진 세르베투스가 보낸 친필 편지를 교회 당국에 보내었다. 교회 당국은 그에게 화형을 언도했지만 그는 감옥을 탈출했다. 세르베투스는 제네바에 도착했다. 그 날은 주일이었고 그는 교회에 출석했다. 그를 알아본 누군가가ㅔ 칼빈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칼빈은 의회에 고발했다. 방종주의자들은 세르베투스의 편을 들었다. 하지만 삼위일체를 부인한 죄에 대한 형벌은 죽음이었다.
세르베투스에게 판결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은 칼빈이 아닌 소의회에게 있었다. 소의회는 이 일에 관해 스위스의 네 도시에 있는 교회와 의회에 자문을 구했고 그들의 답은 처형이었따. 소의회는 세르베투스를 화형시키도록 판결을 내렸다.
방종주의자들이 쇠퇴하기 시작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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