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12.12쿠데타의 원인과 정치적 의미

저작시기 2012.04 |등록일 2013.04.17 한글파일한글 (hwp) | 12페이지 | 가격 3,000원

소개글

12.12쿠데타(12.12사태)에 대한 기존의 거의 모든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한 레포트 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발생원인
1. 정치·사회적요인
2. 군부 내적요인

Ⅲ. 정치적 의미

Ⅳ. 결론

본문내용

2. 군부 내적요인
유신체제하의 박정희는 권력구조의 안정을 위하여 군부를 육군참모총장 등의 상층지휘집단과 각 주요 전투부대 단위의 핵심 소장장교집단으로 이원화하여 군부 내의 파벌관계와 충성도를 고려하여 상호 견제하는 방식으로 요직을 배분하였다. 이러한 요직배분은 원로장성집단과 소장성집단간의 갈등을 산출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통치양상 때문에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까지 군부 내 갈등은 김재규 보안사령관과 윤필용 수경사령관의 대립과, 지휘계열의 원로장성집단과 핵심전투부대를 장악하고 있는 소장장성집단과의 갈등, 유신말기의 하위핵심권력기관을 대표하는 차지철과 김재규 간의 갈등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군부 내의 대립과 갈등 속에서 차지철과 하나회를 중심으로 한 소장장성들과의 연계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되었다. 박정희의 직접적인 분할통치의 대상이었던 군부는 내부의 파벌적 대립이나 갈등차원이 아닌 국가권력기구와 밀착된 분파갈등으로 전개되면서 군 내부의 육사8기생들의 세력이 점차 확대되자 이를 견제 할 목적으로 육사 11기 중심인 정규 육사출신 소장 장교그룹을 집중 지원하여 군부 내 친위세력으로 육성하였다. 전두환, 노태우 등이 조직한 ‘하나회’를 적극 육성하였으며 군부 내에서는 서종철, 윤필용 등이 후원케 하고 군 외부에서는 박종규가 후원하도록 하였다.
12.12, 5.17쿠데타 당시 군의 정치개입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였던 하나회는 1952년 1월 한국전쟁 중에 육사에 입교하여 55년 소위로 임관한 4년제 정규과정의 첫 졸업생이었던 육사11기 영남출신들의 생도시절 친목 모임인 오성회를 모체로 하고 있다. 오성회는 58년경 육사 11기의 또 다른 영남출신인 손영길, 정호용, 권익현을 가담시켜 칠성회로 확대하였다. 이 모임은 추가로 박갑룡, 노정기, 남중수를 가입시켰으며 이들은 “우리는 누가 뭐라해도 정규육사 1기다. 그리고 나라도 ‘하나’ 우정도 ‘하나’로 뭉쳐야 한다.” 라는 취지에서 명칭을 ‘하나회’로 명명하게 되었다.
하나회 구성원들은 4년제 육사 첫 졸업생이라는 점에서 엘리트 의식이 대단히 강했고, 군의 인사 적체현상으로 진급문제에 있어서 선배장교들에 대한 불만이 높았다.

참고 자료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종합보고서. 제2권,8개 사건 조사결과 보고서, 상”, 2007.
김선경, “12.12, 5.17 쿠데타 주도세력의 집권배경과 과정에 대한 연구”, 서강대학교 대학원, 1993.
김영명, 『한국의 정치변동』, 을유문화사, 2006.
김영진, 『충정작전과 광주항쟁 上, 下』, 동광출판사, 1989.
김판근, “군부의 정치개입에 관한 연구 : 12.12사태를 중심으로”, 경남대학교 행정대학원, 2004.
동아도서편집부, 『이럴 수가 제5공화국 전두환 정권』, 동아도서, 1988.
정승화, 『12·12사건 정승화는 말한다』, 까치, 1987.
정주신, “12·12쿠데타의 정치사적 의미”,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2004.
Phoolsawat Wiphaphorn, “한국과 태국의 정치변동 비교연구 : 쿠데타를 중심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 2010.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