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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헤이안 시대의 역사적 의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저작시기 2012.06 |등록일 2013.04.16 한글파일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일본 헤이안 시대의 역사적 의의를 정치, 경제, 사회, 문화로 나누어 분석한 글입니다.
분야를 나누어 고찰하면서 여러 책을 참고했습니다.
헤이안 시대를 여러 방면으로 바라본 글입니다.
기말과제로 제출하여 성적 에이뿔 받았습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헤이안 시대의 역사적 의의
1) 정치적인 면에서의 율령체제의 붕괴
2) 경제적인 면에서의 율령체제의 붕괴
3) 사회중심세력의 변화
4) 불교의 변화
5) 문화전반의 변화

3. 나가며

본문내용

1. 들어가며
간무천황은 호족과 불교세력의 전횡으로 혼란에 빠진 정치를 재정비하기 위해 천도를 794년 천도를 단행했다. 새로운 수도는 평안낙도(平安樂土)의 염원을 담아 헤이안쿄(平安京)라고 이름 지었다. 헤이안쿄를 수도로 하는 헤이안 시대는 1180년대 세이와 겐지의 후손 미나모토 요리토모가 수립한 일본 최초의 무가정권인 가마쿠라 막부가 등장하기 전까지 이어진다.
수도를 헤이안으로 이전했을 당시만 해도 천황의 지위는 매우 높았다. 여러 가지 개혁이 이루어졌고 당나라와의 교역도 계속되어 중국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율령제도의 기본이었던 구분전의 반전이 제대로 지켜지지 못해 율령제도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귀족, 사원은 광대한 토지를 차지하게 되어 백성들 중에는 귀족의 고용인이 되거나 장원으로 이동하는 자가 많아졌다. 헤이안 시대 초기부터 실권을 장악한 후지와라씨는 그 반대세력이었던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를 제거한 후부터 세력이 더 강해졌다.

<중 략>

헤이안시기 일본풍의 국풍문화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침전조(寢殿造) 건축양식이다. 이 건축양식은 에도(江戶)시대 후기까지 귀족 저택양식으로 이어졌다. 연못을 중심으로 정원의 정면에 아미타여래를 안치한 아미타당을 배치하는 사원건축도 발달했다. 후지와라 요리미치가 건립한 평등원(平等院)의 봉황당(鳳凰堂)이 대표적이다. 이런 건축 내부에는 일본의 풍물을 소재로 해서 부드러운 선과 온화한 색채를 특징으로 하는 야마토에(大和繪)가 그려졌다. 일본적인 것을 추구하는 문화 분위기를 반영하듯 일본 내 경치가 아름다운 장소, 이름난 장소, 유명한 산들의 풍경을 병풍과 벽화로 그렸다. 이렇게 중국 당풍을 대신한 일본풍의 문화가 나타났던 시기가 헤이안시대였다. 시대가 가면서 민중문화도 조금씩 나타났다. 야마토에의 기법이 더 발전한 에마키모노(繪卷物)라는 두루마리 그림에서는 동물을 통해 귀족과 승려를 풍자하고 민중의 생활이 그려질 정도였다.

참고 자료

일본사학회 지음, 『아틀라스 일본사』, 사계절, 2011
구태훈, 『일본 고대·중세사』, 재팬리서치21, 2008
모로 미야, 『헤이안 일본』, 일빛, 2008
김희영, 『이야기 일본사』, 청아출판사, 2006
연민수, 『일본역사』, 보고사, 1998
박경희, 『연표와 사진으로 보는 일본사』, 일빛,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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