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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냉전체제(탈냉전시대)와 러시아 대통령 보리스 옐친, 탈냉전체제(탈냉전시대)와 한국 대통령 김영삼, 탈냉전체제(탈냉전시대)와 카를로스 메넴, 탈냉전체제(탈냉전시대)와 김일성 분석

저작시기 2013.04 |등록일 2013.04.16 한글파일한글 (hwp) | 16페이지 | 가격 2,500원

목차

Ⅰ. 서론
Ⅱ. 탈냉전체제(탈냉전시대)와 러시아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
Ⅲ. 탈냉전체제(탈냉전시대)와 러시아 대통령 보리스 옐친
Ⅳ. 탈냉전체제(탈냉전시대)와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
Ⅴ. 탈냉전체제(탈냉전시대)와 한국 대통령 김영삼(문민정부)
Ⅵ. 탈냉전체제(탈냉전시대)와 아르헨티나 대통령 카를로스 메넴
Ⅶ. 탈냉전체제(탈냉전시대)와 북한 지도자 김일성
Ⅷ.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1980년대 중반에 들어오면서 소련은 공산주의 블록의 지도자로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동유럽국가와의 갈등, 경제적인 침체,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참화, 아프가니스탄 사태와 같은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등장한 브레즈네프, 안드로포크, 채르넨코와 같은 지도자들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병사하거나 물러나게 되었다. 그러나 1985년 서기장으로 선출된 고르바초프는 그 전임자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개혁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는 글라스노스트(glasnost)와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를 주창하고, 공산당을 재조직하고, 언론의 자유를 과감히 허용하였다. 그는 소련사회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정치적 병폐를 비판하고 과감한 치유책을 제시하였다.
특히 1990년 소련은 공산주의의 엔진-공산당-유일체제를 포기하고, 다원적 정치질서를 도입하였다. 또한 국제정치에서 소련의 역할은 혁명적으로 변하였다. 고르바초프는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포기하고, 미국과 재래식 무기와 핵무기 협상속도를 가속화하고, 제3세계 분쟁지역에서 소련굴을 철수하고, 70년 동안 계속된 자본주의 진영과의 갈등상태를 완전히 종식시켰다. 그러나 고르바쵸프가 페레스트로이카를 통해 소련의 정치․사회․경제 질서를 재편하려고 애썼으나, 그 결과는 비관적이었다. 시장경제도입으로 인한 인플레이션과 높은 실업률, 정치적 대립세력들의 상호갈등과 반목, 사회적 불안 따위가 바로 그것이었다. 한편, 고르바초프와 옐친은 1991년 4월 ‘9+1’공식을 완전히 세웠다. 이 공식은 소련의 분권화, 그 공화국들의 실질적인 자치권행사, 소비에트정부의 통화군비외교문제에의 독점권 등을 규정하였다. 결국 1991년 6월 선거에서 옐친이 러시아근대사에서 최초로 민선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이와 같은 사태는 결국 전통적인 소련 공산당의 해체와 그 재건을 꾀하는 세력 사이에서 쿠테타로 발전되었다. 쿠데타 세력은 일당제도의 복구를 그 목적으로 삼았다. 쿠데타 이후 고르바초프의 프로그램을 이어 받은 옐친은 소련공산주의제국을 해체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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