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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좌익세력발전과 8 15해방(8 15광복), 제주도 좌익세력발전과 신탁통치반대, 3 1시위, 제주도 좌익세력발전과 반미반정운동, 제주도 좌익세력발전과 4 3항쟁(4 3사건)

저작시기 2013.04 |등록일 2013.04.16 한글파일한글 (hwp) | 15페이지 | 가격 2,500원

목차

Ⅰ. 개요
Ⅱ. 제주도 좌익세력발전과 건국준비위원회결성
Ⅲ. 제주도 좌익세력발전과 8 15해방(8 15광복)
Ⅳ. 제주도 좌익세력발전과 신탁통치반대
Ⅴ. 제주도 좌익세력발전과 3 1시위
Ⅵ. 제주도 좌익세력발전과 반미반정운동
Ⅶ. 제주도 좌익세력발전과 2차미소공위(2차 미국과 소련의 공동위원회의)
Ⅷ. 제주도 좌익세력발전과 4 3항쟁(4 3사건)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개요

19세기 제주도에서의 최초의 농민봉기는 1813년에 발생하였다. 이 농민봉기는 제주도 중면의 풍헌 양재해를 위시하여 김익강, 고덕호, 강필만 등이 동년 12월 6일 밤에 봉기하기로 모의하다가 윤광종의 밀고로 폭로된 사건이었다. 양재해는 1811년 평안도에서 농민전쟁이 발생하였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세도정치 폐해와 지방차별대우에 대해 봉기, 항쟁하여야 하며· 제주도는 반드시 제주인이 자립하여야 잘 살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신념하에서 관리들과 서로 계를 조직하여 친목을 도모하고, 한편으로는 비밀히 많은 사람들을 규합하고 역사를 모집하며 병기를 제조하는 등의 준비를 갖추어 목사와 판관 및 정의현과 대정현의 양 현감을 죽이고 전도를 점령하여 해상로를 봉쇄한 다음 자치하고 자주할 음모를 진행하였으나 거사 10여일 전에 윤광종의 밀고로 50여명이 체포됨으로써, 봉기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에 놀란 정부는 다음해

<중 략>


Ⅵ. 제주도 좌익세력발전과 반미반정운동

제주도에는 탐관오리의 착취나 중앙정부의 억압에 대한 전 도민적인 저항의 역사가 존재했는데, 미군정에 의해 존속된 일제하 경찰기구와 인사는 반경감정을 악화시켰다. 중앙에서 시작된 일제경찰의 군정경찰로의 변신은 제주도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대표적인 예가 1945년 말과 1946년 초 제주경찰서장으로 발령받은 일제 순사부장 출신인 박형규나 김창희의 경우이다.
도제 실시 이후에 제주경찰 기구가 확대 개편됨에 따라 타도에서 경찰간부들이 충원되기 시작하였는데, 이들 가운데 친일경찰이 적지 않았다. 이들은 모리배와 결탁, 상납을 받으면서 부정을 저지르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복시환 사건’의 신우균이었다. 제주에서 쫓겨난 신우균은 제주경찰을 사상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모략하여, 조병옥 경무부장은 1947년 2월 23일 육지경찰을 제주에 파견하기에 이른다. 이들은 현지에 대한 이해는 커녕 제주도 전체를

참고 자료

김창후(2003), 4·3 항쟁, 그 진실과 현실,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신복룡(1994), 한국 신탁통치의 연구, 한국정치학회
윤덕영(2010), 8·15 직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의 조직적 한계와 좌·우 분립의 배경, 한국사학회
우경화(2008), 신탁통치문제와 미소공동위원회, 한양대학교
츠카사키 마사유키(2007), 해방 직후 제주도의 정치 정세,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홍석표(1993), 1947년 제주도 3·1절기념시위사건 연구, 제주산업정보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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