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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세계대전과 일본의 경제, 제2차세계대전과 일본의 지위, 제2차세계대전과 일본의 류탸오거우사건(류탸오후사건), 제2차세계대전과 일본의 카이로회담과 포츠담회담, 워싱턴회의 분석

저작시기 2013.04 |등록일 2013.04.16 한글파일한글 (hwp) | 13페이지 | 가격 2,000원

목차

Ⅰ. 서론

Ⅱ. 제2차세계대전과 일본의 경제
1. 확실한 벌칙의 결여
2. ‘금융자유화’ 실태

Ⅲ. 제2차세계대전과 일본의 지위

Ⅳ. 제2차세계대전과 일본의 류탸오거우사건(류탸오후사건)

Ⅴ. 제2차세계대전과 일본의 카이로회담과 포츠담회담
1. 카이로 회담
2. 포츠담 회담

Ⅵ. 제2차세계대전과 일본의 워싱턴회의

Ⅶ.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메이지초기 서구세계와 조우하게 된 일본의 지식인들은, 앞서 지적한 국제정치의 계서성(階序性)을 누구보다도 민감하게 인식하였다. 예컨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는 1875년에 저술된 『文明論之槪略』등의 저술을 통해 문명의 단계를 야만(野蠻)과 반개(半開), 그리고 문명(文明)의 3단계로 구분하고, 메이지기의 일본이 아직 반개(半開)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진단하였다. 그리고 일본으로서는 하루 빨리 문명으로 나아가는 것이 과제라고 하였다.
그런데 청일전쟁에서 승리하고,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일본은 이제 반개(半開)의 상태가 아니라 서구 열강과 지위를 같이하는 문명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더욱이 1914년에 발발한 제1차세계대전에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한 일본은 1918년 종전 후 개최된 강화회의에서 영국, 미국에 이은 세계 3위의 군사대국으로 지위를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새롭게 획득된 국제정치의 지위를 일본의 식자들은 어떻게 인식하고, 그 속에서 어떠한 역할을 모색하려고 하였는가.
일본 정부의 주류는 청일 및 러일전쟁 등을 통해 획득된 영역을 발판으로 추가적인 대륙확장을 기도하려는 국가전략을 구상하고 있었다. 예컨대 1907년에 육군과 해군이 공동으로 작성하여 메이지(明治)천황의 재가를 받은 「帝國國防方針」은 개국진취를 국시로 표방하면서, 만주 및 한국에서 획득한 이권을 확보하고, 아시아의 남방 및 태평양 방면으로 더욱 이를 확장할 것을 제국 시정의 대방침으로 삼을 것을 천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러시아와 미국을 가상적으로 설정하고 그에 대비한 군사력 건설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이같은 팽창적 대륙정책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다. 제1차대전 종전 무렵인 1918년에 채택된 제국국방방침 제1차 개정안도 역시 개국진취, 국권확장 등을 국가목표로 제시하면서, 러시아, 미국, 그리고 중국을 가상적으로 하는 팽창적 대륙정책과 군사정책을 기본 기조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일본의 국제적 지위가 상승하면서, 메이지시대 이래 문명의 수입상대가 되었던 영미식의 국제질서관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면서, 일본적 세계관을 확립하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귀족출신이면서 후일 태평양전쟁 당시 수상까지 역임하게 되는 고노에 후미마로(近衛文麿)는

참고 자료

김현승, 일본의 워싱턴 회의 준비 및 협상 경과, 대한민국해군, 2010
김영숙, 일본 방공 외교의 전환과 제2차 세계대전, 한국일본학회, 2008
김성규, 일본의 방위산업에 관한 연구: 제2차 세계대전이후를 중심으로, 국방대학교, 1983
조일문, 카이로 회담 소고, 삼균학회1986
한국역사교육연구회, 경제 공황과 제2차 세계 대전, 한국가우스, 2012
Hyun Woong Hong,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인 강제격리 결정과정에 관한 연구, 한국미국사학회,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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