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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세계대전 이후의 전체주의,베르사유조약(파리강화회의), 제1차세계대전 이후의 동유럽국가,국제연맹, 제1차세계대전 이후의 군비축소(군축), 제1차세계대전 이후의 한국경제 분석

저작시기 2013.04 |등록일 2013.04.16 한글파일한글 (hwp) | 8페이지 | 가격 2,000원

목차

Ⅰ. 제1차세계대전 이후의 전체주의
1. 이탈리아의 파시즘
2. 독일의 나치즘
3. 일본의 군국주의

Ⅱ. 제1차세계대전 이후의 베르사유조약(베르사유체제, 파리강화회의)

Ⅲ. 제1차세계대전 이후의 동유럽국가

Ⅳ. 제1차세계대전 이후의 국제연맹

Ⅴ. 제1차세계대전 이후의 군비축소(군축)

Ⅵ. 제1차세계대전 이후의 한국경제
1. 경제발전의 자양이 된 전통적 기반
2. 일제 식민지하의 한국경제와 그 영향
1) 근대화에 일정한 역할
2) 해방 후 남북의 분단
3) 한국 경제 성장의 수혜자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제1차세계대전 이후의 전체주의

1. 이탈리아의 파시즘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는 분명히 전승국의 일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적으로 좌절하고 있었다. 전리품의 배분에 있어서 푸대접을 받았을 분만 아니라, 확장된 영토에 있어서도 그것은 대다수 이탈리아 국민들이 원하는 바의 결과는 아니었다.
대전에서 이탈리아는 60만이라는 엄청난 전사자를 내었으며, 원래 기초가 약했던 자본주의 경제도 크게 파괴되었다. 군수공장은 평화산업으로 전화되지 못하여 대량의 실업자를 내었으며, 인플레이션과 생활필수품의 부족으로 대중의 생활상태는 날로 악화되어 갔다.
게다가 통화가치의 하락 때문에 프티부르주아는 큰 타격을 받았으며, 농민계급은 오히려 전쟁 전보다 더욱 빈곤해졌다. 이러한 형태의 국민적 좌절감은 근대 민족주의와 관계하여 권위주의적 정치형태의 기반을 쉽게 조성시켰다.
이탈리아는 자연자원이 근본적으로 부족하였다. 게다가 북부 이탈리아에서는 도시화와 산업화가 눈부신 발전을 보이고 있었으나, 대조적으로 남부에서는 후진농촌으로 방치되어 심각한 지역적 격차를 보이고 있었다. 또한 지주와 기업소유자로 이루어진 지배계급은 교양을 갖추고 권력을 장악하여, 재산과 교양이 없는 노동자 및 농민을 지배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러한 지리적․계급적 불균형은 민주화의 기반을 잠식시켜 나갔다. 선거권은 읽고 쓸 수 있는 자는 21세 이상, 읽고 쓰지 못하는 자는 30세 이상의 이탈리아인으로 제한되었다. 북부 산업지역에서는 조직화된 공산주의 운동이 성장해 가며 갈등을 야기시키고 있었다. 당시 이탈리아의 이러한 만성적인 위기상황은 중산계급들에게 새로운 사태에 대비하게 하는 경각심을 불러일으켰고, 파시즘이 자리 잡도록 환경을 조성시켜 나갔다.
게다가 1915년 4월 영국, 프랑스, 러시아와 체결했던 「런던비밀조약」에서 참전의 대가로 보장받았던 미회복지역과 달마티아지역에 대한 지배권도 베르사이유 평화회의에서 거의 공문화 되어 버리고 말았다. 또 「워싱턴 군축회의」에서 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간에 주력함과 항공모함의 비율이 미국과 영국은 5, 일본은 3, 프랑스와 이태리는 1.75로 정해졌는데, 프랑스의 경우는 소규모 잠수함은 무제한으로 생산할 수 있었고, 일본은 태평양지역에서 현상을 유지하려는 목적을 관철시켰다.
이러한 과정에서 파생되었던 이탈리아의 국민적 수치감과 전후 처리에 대한 불만이 이탈리아의 파시즘 대두에 결정적으로 작용하였던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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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화 / 제1차 세계대전과 전후 동아시아 사상계, 동북아시아문화학회, 2002
최재호, 이성호 외 1명 / 한국이 보이는 세계사, 창비,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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