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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이태리)의 약력, 이탈리아(이태리)의 기본정보, 이탈리아(이태리)의 수도, 이탈리아(이태리) 건축,관광명소, 이탈리아(이태리) 대학시스템,베니스가면축제(베네치아가면축제)

저작시기 2013.04 |등록일 2013.04.16 한글파일한글 (hwp) | 16페이지 | 가격 2,500원

목차

Ⅰ. 서론
Ⅱ. 이탈리아(이태리)의 약력
Ⅲ. 이탈리아(이태리)의 기본정보
Ⅳ. 이탈리아(이태리)의 수도
Ⅴ. 이탈리아(이태리)의 건축
Ⅵ. 이탈리아(이태리)의 관광명소
Ⅶ. 이탈리아(이태리)의 대학시스템
Ⅷ. 이탈리아(이태리)의 베니스가면축제(베네치아가면축제)
Ⅸ.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파시즘은 이탈리아 사회의 모든 계급 안에 침투했다. 그런 의미에서 파시즘은 반파시즘과 마찬가지로 계급을 초월한 현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양자의 주장에는 역점을 두는 문제에 큰 차이가 있었다. 파시즘은 무엇보다 먼저 이탈리아 사회를 국가주의 일색으로 물들이려고 했다. 파시스트 정권은 지중해지역에서 영토확장 정책을 실천에 옮겼는데, 이것은 중세에 시작하여 그 후 제노바, 베네치아 양 제국까지 내려온 이탈리아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1932년 뭇솔리니는 <파시즘 이론>안에 전쟁을 도입하여 「전쟁이야말로 인간의 에너지를 긴장의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작업이며 또한 이것에 맞서는 용기 있는 사람들에게 귀족으로서의 위치를 <보장>해주는 것이다」라고 호언하고 있다. 뭇솔리니는 「파시즘은 외국에 수출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후에 외국에 거주하는 이탈리아인에게도 파시즘을 강요하려 했으며, 나아가서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정복한 점령지에까지 이것을 관철하려고 했다.
그럼에도 뭇솔리니가 이디오피아를 정복했을 때에는 국내의 민심을 장악하는데 성공했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에 이탈리아가 참전했을 때에는 별로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후에 독일에 예속할 수밖에 없게 된 뒤로는 완전히 국민의 반감을 사게 되었다. 파시즘이 가장 많이 의존하고 있었던 지지층은 중산계급과 농민이었다. 파시즘의 주축이 되었던 제대군인의 태반이 이 양자에 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F. 카타라노의 설명에 의하면 파시스트정권과 쁘띠부르죠아 계급 사이의 관계에 긴장이 생길 때마다 파시즘정권은 궁지에 빠지게 되었다는 것인데, 1924년과 1926년의 통화 인플레 때의 일과 1932년에서 1934년 사이의 경제공황 속에서 재군비가 강행되었던 때의 일을 아울러 생각할 때, 카타라노의 견해에 수긍이 간다. 농민층에 대하여서는 곡물류에 대한 보호관세의 창설, 간척, 관개, 식수 등을 포함하는 토지개량책-로마 동남방의 소택지, 로마 근교의 전원지대 등이 그 좋은 예임-소맥증산장려운동 등의 조치를 강구한 외에 뭇솔리니 자신이 농작물 수확에 직접 참여하는 극적인 장면도 연출되었다.

참고 자료

백상현(2011), 이탈리아 소도시 여행, 시공사
손준희(2010), 이탈리아 일주일 여행, 웅진리빙하우스
안그라픽스 편집부(2010), DISCOVER 이탈리아, 안그라픽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저, 박찬기 역(2004), 이탈리아 기행1, 민음사
윤도영, 박기남(2012), 이탈리아 데이, TERRA
히라이 다카코 저, 편집부 역(2004), 이탈리아, 홍익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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