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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대공(블라디미르 1세)의 종교개혁, 블라디미르 대공(블라디미르 1세)의 신(神), 블라디미르 대공(블라디미르1세)의 기독교수용, 블라디미르 대공(블라디미르1세)의 세례

저작시기 2013.04 |등록일 2013.04.15 한글파일한글 (hwp) | 11페이지 | 가격 2,000원

목차

Ⅰ. 개요

Ⅱ. 블라디미르 대공(블라디미르 1세)의 종교개혁

Ⅲ. 블라디미르 대공(블라디미르 1세)의 신(神)

Ⅳ. 블라디미르 대공(블라디미르 1세)의 기독교수용

Ⅴ. 블라디미르 대공(블라디미르 1세)의 세례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개요
988년 봄이나 여름 무렵에 루시의 군사 6 천명이 콘스탄티노플에 머물렀다. 989 년 4 월 13 일 아비도스(Абидос) 근처의 전투와 흐리소뽈리스(Хрисополис) 부근의 전투에서 루시군은 바르다 포까가 이끄는 반란군과의 전쟁을 끝냈고, 바실리 황제의 권력은 유지되었다. 루시군대는 비잔티움에 남아 주둔하였고, 블라지미르 대공과 끼예프 주민들은 서둘러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아비도스 근처의 전투에서 승리한 후에 황제는 블라지미르에게 한 약속의 이행을 서두르지 않았다. 기존의 전통에 따르면 황실후예가 야만인인 非 기독교인과 결혼하는 것은 금지되었고, 황실 태생의 신부도 역시 끼예프로 가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스인의 두 얼굴에 화가 난 블라지미르 대공은 무력을 행사하여 목적을 이루리라 결심하였고, 그래서 끄림(Крым) 반도의 비잔티움 땅으로 진격하여 989년 4월과 7월 사이에 헤르소네스(Х ерсонес, Корсунь) 부근을 점령하였다. 비잔틴 제국에 대한 불가리아인의 적대적 행위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블라지미르 대공에게도 헤르소네스를 빼앗기자, 바르다 포까 이후 그의 동생인 바르다 스끌리르(Варда Склир)가 이끄는 폭도들을 진압하는 조치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바실리 황제는 결국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누이를 희생시킬 결심을 하였다. 안나는 블라지미르와 결혼이 행해진 헤르소네스로 보내졌고, 이 도시는 지참금 형식으로 황제에게 되돌려졌다.

<중 략>

끼예프 사람들은 비잔틴 제국의 황녀를 데리고 온 블라지미르를 환영하면서 지금까지의 관습들을 내버려도 좋다고 표하였다. 이에 대공은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던 뻬룬의 우상을 드네쁘르강에 던져버리고, 자신이 거느리던 많은 아내와 첩들을 해방시켜 주었다. 끼예프인들은 명령을 받을 필요도 없이 자신들의 대공이 좋다고 판단한 것이기 때문에 틀림없을 거라는 믿음하에 자발적으로 드녜쁘르강으로 뛰어들어 주교나 신부들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곧 이어 루시 땅 각지의 마을 사람들도 세례를 받고 교회를 세우기 시작했다.

참고 자료

김경묵 : 이야기 러시아사, 청아출판사, 2006
게오르기 페도토프 저, 김상현 역 : 러시아 종교사상사 1(키예프 루시 시대의 기독교), 지만지고전천줄, 2008
에이브러햄 애셔 저, 김하은 외 1명 역 : 처음 읽는 러시아역사, 아이비북스, 2012
오종우 : 러시아 거장들 삶을 말하다, 사람의무늬, 2012
이무열 : 러시아 역사 다이제스트 100, 가람기획, 2009
정막래 : 러시아 역사인물 사전, 계명대학교출판부,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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