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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 옐친정권][옐친정권][경제]보리스 옐친정권의 경제위기, 보리스 옐친정권의 외교정책, 보리스 옐친정권의 노동자투쟁, 보리스 옐친정권의 미러관계(미국과 러시아의 관계) 분석

저작시기 2013.04 |등록일 2013.04.15 한글파일한글 (hwp) | 12페이지 | 가격 2,000원

목차

Ⅰ. 개요

Ⅱ. 보리스 옐친정권의 경제위기
1.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 부재
2. 국제적인 경제환경 변화
3. 경제전반에 걸친 구조적 문제

Ⅲ. 보리스 옐친정권의 외교정책
1. 친서방주의의 대두와 지속(1991년~1993년)
2. 조정기(1994년~1995년)
3. 강대국 지위 회복을 위한 전방위 외교(1996년~1999년)

Ⅳ. 보리스 옐친정권의 노동자투쟁

Ⅴ. 보리스 옐친정권의 미러관계(미국과 러시아의 관계)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개요
러시아인이 아시아 총면적의 1/4이며, 세계대륙의 거의 1/10을 차지하고 있는 시베리아를 차지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왜 역사적으로 아시아의 대륙세력이었던 터키와 인도와 중국과 몽골과 한국, 해양세력이었던 일본과 미국 그리고 영국을 포함한 유럽 세력들이 시베리아로 진입하지 못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 이유의 대답은 시베리아의 자연 지리적 환경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시베리아의 북쪽은 북극해와 경계를 이루고 있어 해양 세력의 접근이 불가능했다. 시베리아 동쪽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베링해와 오호츠크해는 잦은 안개와 빙하의 유동으로 인해 해양 세력의 접근이 용이하지 않았다. 시베리아의 남쪽은 높은 산악지대와 빽빽한 타이가 지대와 늪지가 있어 대륙 세력의 접근이 어려웠다고 볼 수 있다.

<중 략>

클린턴 행정부는 이러한 사태 발전을 막고 러시아의 체제 전환을 지원하며, 국제문제 해결을 위한 협력 기반을 구축하기 위하여 러시아와 ‘전략적 동맹’ 또는 ‘전략적 동반자’(strategic partnership) 관계를 강화하려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클린턴 대통령(이하 클린턴)은 옐친과 러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민주화의 진전에 대한 부시의 무관심을 비판하면서 취임 초기부터 적극적인 대러시아 정책을 추진하였다. 우선 그는 러시아를 비롯한 NIS 관련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러시아문제 담당팀을 구성하였다. 클린턴은 피커링(Thomas Pickering)을 주러 미국대사로, 소련전문가 가티(Toby Gati)를 백악관 국가안보위원회 러시아담당 서기로, 그리고 섬머스(Lawrence Summers)를 대러 경제정책 담당관 등에 임명하는 한편, 그 자신도 집권 초기에 구 소련 지역의 상황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데 상당한 시간 투자를 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클린턴은 취임 후인 1993년 4월 4일 캐나다의 벤쿠버에서 옐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기 위해 첫 해외 나들이를 하였으며, 이에 앞서 4월 1일 메릴랜드 애나폴리스의 ‘미국 신문편집장협회’ 모임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러시아와의 ‘전략적 동맹’ 관계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또 당시 특명 전권대사이자 NIS에 대한 클린턴 대통령의 특별 고문이던 탈보트는 동년 4월 19일 ‘하원 세출위 국제관계 소위원회’에 출석하여 NIS의 성공적인 개혁을 위하여 ‘전략적 동맹’ 관계를 구축시킬 것을 주장하였다.

참고 자료

김창희(1999), 러시아의 정치과정과 옐친, 한국정치정보학회
김준봉(2012), 세기의 권력자들, 이담북스
서동주(2005), 러시아 옐친과 푸틴기 내각개편, 한국국제정치학회
윤익중(2003), 옐친의 대 한반도 정책변화와 러시아 외교의 성격 고찰,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인성(1996), 옐친 정치 개혁의 성과와 전망, 한국슬라브학회
한종만(2000), 옐친 10년의 평가, 한국동북아경제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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