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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몽고]몽골(몽고)의 역사, 몽골(몽고)의 기본정보, 몽골(몽고)의 자연, 몽골(몽고)의 신앙, 몽골(몽고)의 정치, 몽골(몽고)의 창세신화, 몽골(몽고)의 언어체계 분석

저작시기 2013.04 |등록일 2013.04.15 한글파일한글 (hwp) | 11페이지 | 가격 2,000원

목차

Ⅰ. 서론

Ⅱ. 몽골(몽고)의 역사

Ⅲ. 몽골(몽고)의 기본정보
1. 위치
2. 면적
3. 인구
4. 인구밀도
5. 수도
6. 정체
7. 공용어
8. 통화
9. 환율
10. 1인당 국민총생산

Ⅳ. 몽골(몽고)의 자연

Ⅴ. 몽골(몽고)의 신앙

Ⅵ. 몽골(몽고)의 정치

Ⅶ. 몽골(몽고)의 창세신화

Ⅷ. 몽골(몽고)의 언어체계
1. 형태적 특징
1) 형용사의 구성
2) 형용사의 파생
3) 형용사의 비교급
2. 통사적 특징

Ⅸ.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원나라 사신에게 연회를 베풀었더니 고기를 놓고 서로 다투어 먹어 승부를 겨루었다는 고려사의 기록은 고기를 즐겨 먹는 몽고인의 육식전통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몽고의 식생활에 관해서는 남송 말기에 몽고의 사신으로 갔던 팽대아(彭大雅)의 흑달사략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몽고인은 알곡으로 밥을 해먹지 않고 산에서 잡은 토끼사슴멧돼지족제비염소황양야생마 등과 물고기를 먹었다고 한다. 기르는 짐승으로 양이 제일 많았고 소가 그 다음이었으며, 말을 귀하게 여겨 웬만큼 큰 잔치가 아니면 잡지 않았다고 한다. 마시는 것은 말 젖과 소양의 유제품이었고, 요리법은 굽는 것이 주를 이루어 열에 여덟아홉은 굽는 것이었고 삶는 것을 열에 두셋 정도를 차지하였으며 맛을 내는 것은 소금 한 가지였다고 한다.

<중 략>

최근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일제는 경기도 용인지역에 일본 수도를 건설하려는 계획이 있었고 800만 조선 농민(그 당시 조선인구의 3분의 1)을 만주로 이동시키고 일본농부 800만 명을 조선에 이주시키려는 인종이동 계획이 있었다고 한다. 충렬왕 시절 고려가 흉년이 들자 쌀 지원을 해준 몽골제국과 차이점을 보여준다.
일제는 조선 황제 고종을 독살시키고 명성황후를 휘발유로 태워 죽였지만 몽골은 고려왕실의 요청에 의해 쿠빌라이칸의 딸을 내주고 왕실을 지원하였던 것이다. 개경환도와 혼인은 고려가 원한 것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이유 때문에 공민왕 시절, 몽골정부는 내란을 막으려고 고려군에게 지원요청을 한 것이었다.(결국 공민왕은 파병하였고 이 당시 몽골의 허약상을 본 공민왕은 이것을 이용 반원정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1388년 몽골의 잔존세력 북원은 고려에 다시 지원요청을 하고 이러한 기회를 이용 고려는 왕건의 유훈인 고구려(실제 이름은 고려)의 영토를 되찾기 위한 북방회복을 위해 요동수복을 하려고 파병하였다.

참고 자료

김혜정(2012), 초원의 나라 몽골을 가다, 태학사
단국대학교 몽골연구소(2012), 몽골과 한국, 단국대학교출판부
석재현, 강제욱 외 1명(2008), 몽골, 이른아침
이태원(2011), 몽골의 향수, 기파랑
윤은숙(2010), 몽골제국의 만주 지배사, 소나무
최성수(2011), 일생에 한번은 몽골을 만나라,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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