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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백야 김좌진 장군, 독립운동가 강기동 의병대장,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 선생, 독립운동가 우남 이승만 대통령,동암 김가진, 독립운동가 도마 안중근 의사,매헌 윤봉길 의사

저작시기 2013.04 |등록일 2013.04.15 한글파일한글 (hwp) | 11페이지 | 가격 2,000원

목차

Ⅰ. 독립운동가 백야 김좌진 장군
1. 완루구 전투
2. 천수평 전투
3. 어랑촌 전투

Ⅱ. 독립운동가 강기동 의병대장
1. 먼저 일어서 창의한 것이 민권의 선진일 뿐
2. 한국 빈민을 구휼함은 우리 의병의 의무
3. 제이의 이은찬, 창의원수부 중군장 강기동
4. “우리는 이 곳에 있다. 싸울 의사가 있으면 속히 오너라”

Ⅲ.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 선생

Ⅳ. 독립운동가 우남 이승만 대통령

Ⅴ. 독립운동가 동암 김가진

Ⅵ. 독립운동가 도마 안중근 의사

Ⅶ. 독립운동가 매헌 윤봉길 의사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독립운동가 백야 김좌진 장군

청산리전투는 좁은 개념으로 보면 1920년 10월 21일 김좌진이 지휘한 대한군정서 독립군이 화룡현 삼도구 청산리 백운평 계곡에서 독립군 토벌을 위해 침입한 일본군 동지대 소속의 산전연대(山田聯隊)를 크게 격파한 전투로 한정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청산리전투라 할 때에는 대한군정서는 물론 이도구 어랑촌 부근의 산림지대에 집결한 홍범도 휘하의 독립군연합부대(대한독립군을 비롯한 대한국민군?훈춘한민회?의민단?대한신민당 등)가 10월 21일부터 26일 사이에 청산리 백운평전투를 시작으로 완루구(完樓溝)?어랑촌(漁郞村)?천수평(泉水坪)?고동하(古洞河) 등 2, 3도구 서북편의 밀림장곡에서 전개한 대소 10여 회의 승첩을 통칭하여 의미한다.
일제의 간도 침략군 가운데 청산리 일대에 침범한 동지대는 용정과 무산 방면에 진출하여 천보산(天寶山)에 주력을 두고 있었으며, 그 산전연대의 주력부대는 20일 삼도구로부터 청산리 골짜기로 침입해 오기 시작하였다. 김좌진 사령관은 그들과 대전하기에 가장 유리한 지형이라고 판단한 골짜기마다 독립군을 전투편제로 이중 매복시켜 놓은 뒤 일본군을 현장으로 유인하였다. 독립군이 매복한 계곡은 청산리 골짜기 중에서도 폭이 가장 좁고 좌우 양편으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솟아 있으며 그 사이에는 백운평이라 부르는 공지가 있어 청산리계곡을 통과하려면 단 하나의 오솔길인 그 공지를 지나게 되어 있었다.

<중 략>

범인(윤봉길)의 自供에 의하면, 鄕里에서 同胞가 內地人(일본인-인용자)에게 박해당하고 있음에 분개하여 해외에서 獨立運動을 해야 한다는 사상을 품기에 이르렀다. 즉 17, 8세경부터 신문?잡지를 閱讀함에 이르자, 朝鮮은 그 固有의 文化를 갖고 自力으로 훌륭히 統治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日本에 服從하여 그 통치하에 있지 않으면 안 되는가. 世界文明의 進步된 今日 他國에 合倂되어 있는 것은 恥辱이라는 생각을 품기에 이르렀다. 신문지상에서 上海에 獨立運動의 機關이 있음을 알게 되자 同地에 가서 韓國獨立을 위하여 活動하려고 도래한 것이라고 한다.

참고 자료

김재철, 안중근의 구국활동과 군사사상, 한국동북아학회, 2011
김도훈, 한말 강기동의 의병 활동과 그 성격, 국방부, 1997
김구, 김구 아름다운 나라를 꿈꾸다, 한겨레아이들, 2009
박창욱, 김좌진 장군의 신화를 깬다, 한국역사연구회, 1994
박희태, '불멸의 민족혼' 윤봉길 의사를 추모하며, 대한민국국회, 2010
인보길, 이승만 다시보기, 기파랑,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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